오헌(梧軒) 서순봉(徐舜鳳'1921~2007)은 초창기 한국 피부과학의 발전 기틀을 만든 선구자였다. 1954년 미국에 건너가 선진 학문을 배운 뒤 당시 미개척 분야였던 한국 진균학(세균학과는 다르며 곰팡이'사상균 등을 연구하는 분야)을 체계화하고 백선균(무좀을 일으키는 곰팡이균)의 전국적인 분포와 실태를 연구해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나병(한센병)의 권위자로 나환자 진료, 이동진료반 운영, 나병전문기관 설립 등으로 한국 나환자 사업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54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21년 12월 27일 경북 군위읍에서 태어났다. 오천초교를 거쳐 1941년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를 졸업한 뒤 일제 강점기에 어려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에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대구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44년 9월 졸업 당시 제13회 졸업생은 한국인 27명, 일본인 43명이었다. 대구동산기독병원에서 의무촉탁으로 근무한 뒤 1946년부터 대구의과대학에 부임해 피부비뇨기과 부의무관, 1949년부터 전임강사로 재직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피부과학은 미개척 분야로 초보적 단계였다. 피부질환의 병명조차 모르는 것이 많은 시절이었고 치료약품도 한정돼 진료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선진 피부과학을 공부하겠다는 꿈을 품고, 1954년 2월 당시로는 생각하기 힘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으로 떠날 때 대구역 플랫폼에서 고병간 경북대총장을 비롯해 많은 교수들이 전송할 만큼 큰일이었다. 가족들도 남겨둔 채 혼자 떠나는 길이었지만 경제적 어려움 탓에 비행기 대신 미국 화물선을 타고 20여 일간 태평양을 건너야만 했다.
1954년 9월부터 필라델피아피부'암병원, 캔자스대 메디컬센터, 뉴욕대병원, 벨뷰병원 등에서 힘든 피부과전문의 수련과정을 마친 뒤 2년 뒤인 1956년 10월 귀국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피부과학의 기틀을 만들었다. 1962년 비뇨기과학교실과 분리해 독립된 피부과학교실을 만들었고, 이후 진균과 나병에 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진균학의 토대 닦아
피부진균증은 진균(곰팡이) 때문에 발생하는 전염성 피부질환이다. 피부과 외래환자의 10~2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하다. 서순봉은 1959년부터 2년간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한국 피부사상균성 질환의 연구, 제1보 두부황백선, 제2보 취모부백선, 제3보 한국 내 병원균의 총괄적 개관'을 발표했다.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두부백선(흔히 '기계충'으로 불리던 것, 머리카락이나 머리 뿌리에 무좀을 일으키는 곰팡이균이 기생하는 질환)에 대해 전국 초등학교 123곳, 고아원 38곳과 피부과 외래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것. 이 논문은 지금도 진균연구의 기본자료로 쓰이며, 미국 피부과학 교과서에도 인용됐다. 서순봉은 이 논문으로 경북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학위번호 3호로 경북대 교수로는 최초의 의학박사였다.
아울러 과거 30년간 사상균의 변천과 변동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우리나라의 피부사상균증과 원인균의 변천'(1996년) 논문을 발표했으며, 80여 편의 진균에 관한 논문을 통해 오늘날 피부진균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한센병 환자 돌보는 데 앞장서
나병은 나균 때문에 피부'신경조직에 손상을 입고, 신체적 불구와 변형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환자들이 해방 후 부랑자로 떠돌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다. 서순봉은 일찍이 나환자 진료와 연구를 시작했다. 첫 연구논문으로 한 정착촌의 나환자 517명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1952년 소록도에서 열린 제1회 대한나학회에서 발표했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이동진료반을 운영하며 경북지역 나환자 4천17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한 '경상북도 재가 및 집단 나환자의 역학적 고찰'(1963년)이라는 논문에서 인구 1천 명당 나환자 비율이 1.87명이라고 보고했다. 이 자료는 정부와 WHO의 한국나병정책에 이용됐다. 이 밖에 50여 편의 나병 관련 논문을 발표해 나환자 조기발견에 많은 도움을 줬다.
1962년 일부 교수와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초로 대학병원 내에 영국 구라선교회(The Leprosy Mission) 병원을 유치했다. 외래와 입원한 나환자들을 대학병원 교수들이 직접 치료, 수술하게 했다. 1973년 영주에 다미안피부과의원을 개원해 경북 북부의 나환자를 도왔고, 서순봉'정상립 교수가 매주 한 차례 5시간씩 차를 타고 가서 진료했다.
◆오헌학술상 통해 학문적 정신 이어
41년간 경북대 의대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헌신하다가 1987년 2월에 정년퇴직했다. 이후에도 칠곡가톨릭피부과의원에 진균의학연구소를 만들어 대학교수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했으며, 피부과 전공의 및 병리기사 등에게 꾸준히 교육도 했다. 서울지역 피부과 전공의들도 진균학 및 나병 교육을 받기 위해 몇 주씩 파견공부를 하기도 했다.
뛰어난 의사이자 학자이며 사회봉사자였던 그는 정부로부터 1960년 녹조소성훈장,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75년 녹조근정훈장, 1967년 대통령표창, 1968년 경북문화상, 1970년 보건사회부장관상 등을 받았다.
오헌 서순봉은 2007년 8월 신장암으로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대한피부과학회는 그의 학문적 정신을 후학들이 잊지 않고 기리기를 바라는 뜻에서 유족들의 도움으로 '오헌학술상'을 제정했다. 2008년부터 매년 전국의 피부과 교수 중 진균학, 나병학, 기타 피부과학 분야에 우수한 업적을 쌓은 연구자 한 명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감수=의료사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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