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피지 '크레이피시 오븐구이'

구운 남태평양 바닷가재 보는 맛>먹는 맛

남태평양의 외딴 섬나라 피지는 연중 지구촌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휴양지다. 덕분에 피지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아시아 등 전 세계의 음식이 총 망라돼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남태평양 바닷가재 요리인 '크레이피시 오븐구이'다. 북태평양 로브스터와 비슷하게 생긴 크레이피시(Crayfish)는 피지와 뉴질랜드 주변 바다에서만 난다. 그런데 크레이피시는 머리만 크고 살이 들어 있는 꼬리 부분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작다. 오븐구이를 해도 겉치레만 번지르르할 뿐 먹을 게 별로 없다. 그래도 피지 해변 관광지 레스토랑은 이 크레이피시가 매출을 끌어올리는 견인차다. 왜 그럴까?

◆남태평양 해산물의 왕자 크레이피시

크레이피시는 로브스터처럼 굵직한 집게다리가 없지만 딱딱한 껍데기와 크기 등 외형은 아주 닮았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해산물로 로브스터가 가재와 닮았다면 크레이피시는 큰 새우를 닮았다. 집게다리가 없는 대신 굵직한 더듬이가 특징으로 머리 부분에 비해 꼬리 쪽이 작다. 그래서 로브스터처럼 큼지막하지만 살은 3분의 1밖에 안 된다. 먹을 수 있는 살은 꼬리 부분에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레이피시는 피지섬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 높고 값비싼 고급 음식이다. 익히기 전 검녹색 바탕에 누르스름한 점줄 무늬가 오븐에 구워 내면 붉은빛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일반적으로 북극해를 떠다니는 유빙 아래 깊은 바다에서 잡히는 로브스터와 달리 크레이피시는 뜨거운 태양의 남태평양 얕은 바다에서 잡힌다.

피지섬 난디(Nadi) 공항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데나라우(Delanau)섬. 섬이지만 연륙교가 있어서 자동차로 그냥 달려갈 수 있다. 늦가을인 북반구와는 달리 한참 신록이 우거지는 초여름이다. 한낮 태양 아래서는 뜨겁지만 시원한 남태평양과 골프장 필드가 펼쳐져 있고, 크고 작은 야자수가 그림처럼 이어져 더위를 느낄 새가 없다. 요트가 정박한 남쪽 해안가는 이 섬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꼽힌다. 이곳에는 맛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본피시, 인디고, 하드록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모두 젝스(Jeck's)라고 하는 관광 레스토랑 체인 외식업체의 라이선스인데, 공항 관광안내센터에서도 소개할 정도로 해산물 요리와 피지의 전통음식이 소문나 있다. 크레이피시는 이 중 본피시(Born fish) 레스토랑에서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각 나라에서 오는 손님들이 연중 줄을 잇는 만큼 레스토랑 메뉴판에 말레이시아 나시고랭과 한국의 불고기가 있을 정도로 세계음식백화점이다. 화려한 남태평양산 해산물 메뉴들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크레이피시. 크기에 따라 한 마리에 20만원을 호가한다.

◆크레이피시가 레스토랑 매출 견인차 역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자 앵지(Angni)라는 여직원이 피지말로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를 반복했다. 메뉴판의 크레이피시를 가리키며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먹어 봐야 맛을 알지요"라고 하며 빙그레 웃는다. 식당 넓이는 600여㎡, 야외와 실내를 합해 좌석은 150석 정도다. 크레이피시는 1㎏에 189피지달러. 1.4㎏짜리 정도가 225피지달러로 우리 돈으로 약 12만원이다. 피지 전통 요리방식은 그냥 굽는 것이지만 레스토랑에선 모네소스로 버무려 오븐으로 찌는 방식으로 조리한다.

조리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먼저 크레이피시를 물에 삶아 낸 후 꼬리 윗부분을 갈라 살을 숟가락으로 파낸다. 파낸 살은 치즈와 버터를 섞어 버무려 만든 모네소스에다 양파를 다져 넣고 생크림과 체다치즈도 추가한 뒤 조리기구인 웍을 이용해 살짝 볶는다. 그다음 레드와인을 뿌리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후 오븐에서 한 번 더 구우면 완성이다. 살을 파낸 몸통은 끓는 기름에 데쳐 붉은 빛깔과 윤기가 나도록 한 다음 오븐에 구워 낸 살을 집어넣는다. 화려한 붉은색을 띤 크레이피시를 큰 접시에 담아 내면 된다. 총주방장 무니 디네쉬 쿠마(36) 씨가 간장처럼 검은 람슈거시럽과 마요네즈 같은 하얀 아이소리소스, 그리고 참기름처럼 고소한 파파야 살사 등 3가지 소스를 내놨다. 소스에 이어 토마토와 오이로 만든 샐러드와 감자튀김도 곁들인다. 크레이피시 구이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소스와 버무려 구운 꼬리살은 고소하게 코를 자극한다. 입안에서 미끄러지는 식감도 이채롭다. 3가지의 소스를 차례로 찍어 맛을 보니 제각각 별미다. 그런데 크기에 비해 양이 너무 적다. 마치 덩치 큰 하마의 작은 꼬리 같다. 음식의 맛만 보는 미식 여행가들에겐 좋겠지만 잔뜩 기대하고 먼 길을 찾아온 대식가들에게는 무척 아쉽다.

◆보기 좋은 음식, 크레이피시

크레이피시는 먹기 좋은 음식이라기보다 보기 좋은 음식이다. 로브스터에 비교하면 크레이피시가 정말 먹을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로브스터는 꼬리뿐만 아니라 집게다리와 머리 부분에도 살이 있다. 그러나 집게다리가 없는 크레이피시는 머리 부분도 아예 요리 대상에서 제외다. 동행한 사진작가가 아쉬운 듯 큼지막한 머리 부분을 쪼개봤지만 텅 비어 있다. 눈요기만 한 것 같은데 음식값은 우리 돈으로 14만원이나 된다. 그래서 본피시 레스토랑은 마린피시라는 생선살과 참치살을 구워 크레이피시에 곁들이고 왈루피시라 부르는 오징어 튀김과 새우꼬치로 더욱 풍성하게 꾸민다.

"사실 크레이피시는 저희 레스토랑의 미끼메뉴에요." 그제야 디네쉬 주방장이 실토했다. 화려한 크레이피시는 식탁을 멋지게 장식한다는 것. 그래서 관광객들의 자랑거리라고 한다. 뭘 먹었느냐가 중요하지 얼마나 많이 먹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는 것. 양이 적다는 점이 오히려 스테이크나 다른 해산물 요리를 추가 주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피지 여행이 결코 배불리 먹기 위한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크레이피시는 미끼 메뉴로서 역할이 충분하다는 게 주방장의 설명이다. 본피시 그릴(46달러)과 로컬 크랩(62달러), 아이 필렛(55달러) 등 3가지는 이 레스토랑의 톱3 메뉴다.

디네쉬 주방장은 "식탁을 화려하게 꾸며 눈에 만족을 주고 최고의 맛으로 입안의 만족, 직원들의 서비스에 의한 분위기의 만족을 겨냥한 메뉴가 곧 크레이피시"라고 말했다. 하루 평균 30~40마리는 족히 나간다고 한다.

이색 관광지에서 특별한 음식을 찾는 관광객들을 겨냥한 레스토랑 주방장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인 크레이피시는 피지에 세계 식도락가들의 미식여행을 계속 이어지게 하는 셈이다.

피지 데나라우섬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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