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돌발 병해충의 습격…이상 고온현상이 토착화 돕는다

경북 농촌·산림 병해충 공포

경북 농촌과 산림에 돌발 병해충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이상 고온현상이 빈번해지고 국제 농산물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외래 병해충이 등장해 농산물과 산림자원에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 지난여름 과수 농가 곳곳에 나타난 미국선녀벌레와 갈색여치, 올해에만 현재까지 경북지역에 8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고사시킨 소나무재선충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방제기술 개발과 국제협력 등 다양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기온 상승과 돌발 병해충 발생은 비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함께 다양한 신규 돌발 병해충이 경북지역에 나타나고 있다. 경북지역의 연평균기온이 1960년대 13℃가량이던 것이 2000년대 들어 14도 이상을 유지하며 점점 오르고 있다.

기온 상승과 함께 외래 병해충의 발생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 경북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1988년 벼물바구미가 나타난 이후로 1993년 꽃노랑총채벌레, 2001년 갈색여치, 2009년 미국선녀벌레, 지난해 배추 순무황화모자이크바이러스(TYMV) 등 병해충 14종이 잇따라 경북 지역에 나타났다. 같은 기간에 연평균기온은 1981년 13.4도에서 2010년 14.6도로 1.2도 상승했다.

기온 상승은 돌발 병해충의 토착화를 돕는다. 경북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병해충은 겨울 월동기간을 지나며 토착화한다"며 "평균기온이 점점 오르면서 병해충의 월동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름마다 심해지고 있는 이상 고온은 병해충의 왕성한 번식을 돕는다. 병해충을 비롯한 모든 곤충은 기온이 높아지면 생식이 왕성해져 개체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개체수가 늘면 특히 산속에 있던 병해충은 부족해진 먹이를 찾아 산과 가까운 밭과 과수원 등에 피해를 끼친다.

◆농촌과 산림 가리지 않는 돌발 병해충

돌발 병해충은 농촌과 산림, 가리지 않고 피해를 입히고 있다. 사과와 복숭아, 포도, 감, 자두 등 과수에 그을음병을 일으키는 미국선녀벌레는 올해 처음 경북 지역을 습격했다. 전국에서 과수 생산량이 가장 많은 경북 지역의 특성상 방제가 늦을 경우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 다행히 경북도농업기술원은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미국선녀벌레의 특성을 감안해 고속도로 휴게소를 대상으로 중점적인 조사를 벌였고, 문경휴게소와 칠곡휴게소, 건천휴게소에서 미국선녀벌레를 발견해 피해 확산을 막았다. 2006년 나타났다가 잠잠했던 갈색여치도 올해 과수농가 곳곳에 나타났다. 포항 등 경북지역 10개 시'군에서는 소나무재선충병이 발생해 소나무 8만7천여 그루가 고사했다.

벼멸구도 대표적인 돌발 병해충이다. 벼멸구는 장마철이면 중국 남부지역에서 날아와 3세대까지 번식하며 500배가 넘게 개체수가 늘어난다. 벼멸구는 벼 줄기의 양분을 빨아먹어 말라죽게 한다. 올해 경남과 전남 등 남해안과 서해안 일부 지역에서 조사 대상 농경지의 절반 이상에서 발견됐을 정도로 기승을 부렸다. 이는 2005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올해 남부지방의 장마가 짧고, 폭염이 더해져 벼멸구가 번식하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북도 관계자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친환경 벼 재배지의 경우 벼멸구가 발생하면 전혀 손을 쓸 수 없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방제기술 개발과 국제협력 등 대응 필요

신규 돌발 병해충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서 이를 막기 위한 방제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특히 병해충의 내성이 강해져 효과가 약해지는 화학 살충제보다는 친환경 방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달 살충제를 쓰지 않고 스스로 해충을 쫓는 벼 품종인 벼물바구미 저항성 벼를 내놨다. 벼물바구미는 유충이 벼의 뿌리에 기생하기 때문에 살충제로 방제하기 어렵다. 농진청은 토양 미생물인 바실러스균의 살충성 유전자를 벼 유전자에 삽입해 저항성을 가진 벼를 개발했다. 농진청 생물안전성과 신공식 박사는 "실험 결과 기존 벼에 비해 50% 이상 병해충 피해 발생이 줄었다"며 "살충제 비용을 아끼고, 환경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천적과 친환경 유기농자재로 각종 신규 돌발 병해충을 방제하는 방법이 개발돼 농가에 보급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동성 병해충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협력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달 1일에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서 한국과 라오스,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몽골, 네팔, 필리핀,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 등 아시아농식품기술협력협의체(AFACI) 11개 회원국이 모인 가운데 '아시아지역 이동성 병해충 네트워크 구축 회의'를 열었다. 이번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벼멸구류 실시간 감시시스템(AMIVS)을 구축하고 벼와 채소, 과수 등과 관련한 각종 이동성 병해충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교환하기로 했다. 이는 지구촌 온난화로 아열대 기후에 살던 병해충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농업과학원 관계자는 "동아시아 지역에 인접한 국가들은 이동성 병해충이 발생하면 같은 피해 영향권 안에 들게 된다"며 "공동 대응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병해충 분야를 넘어 큰 틀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다.

최성용 경북도농업기술원 농업환경연구과장은 "기상재해 예측 모델 개발, 관련 국제협력 및 연구 강화 등 병해충 발생의 근본 원인인 기후 변화에 대한 농업은 물론 기상 관련 기관 및 전문가들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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