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과 이후 대학입시 일정이 숨 가쁘게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주목해야 할 정책이 발표됐다.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방안'이 그것으로 ▷내년부터 4년간 일반고에 교육과정 개선 지원비를 학교당 매년 5천만원 투입 ▷자율형사립고의 학생 선발권 인정 ▷자율형공립고 폐지 유보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고교 선택이 대입 준비에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가운데 이 방안은 고교생뿐 아니라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 방안 원본을 구해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와 닿지 않는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반고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자사고 등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등 이 방안에서 짚어봐야 할 점을 살펴봤다.
◆일반고 교육과정, 어떻게 변할까?
고교 교육과정은 교과군 180단위, 창의적 체험활동 24단위 등 204단위로 구성돼 있다. 1단위는 주당 1시간 수업을 한다는 개념이다. 평균적으로 학기당 34단위를 이수하기 때문에 매주 34시간의 수업이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교육부의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방안'에 따르면 필수 이수단위가 116단위에서 86단위로 줄고 학교 자율과정이 기존 64단위에서 96단위로 늘어난다. 필수 이수단위 가운데 기초교과(국'영'수)와 탐구교과(사회'과학)를 각각 15단위씩 줄이고 자율과정을 그만큼 늘린 것이다.
하지만 실제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범위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능시험에 대비해야 하는 고교 입장에서 기초와 탐구교과를 그만큼 줄이고 다양한 교과를 운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도 필수 이수단위만으로는 부족해 자율과정을 기초와 탐구교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율과정을 늘려봤자 줄인 필수 이수단위만큼 기초와 탐구교과 수업을 더 포함시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결국 이러한 방안을 통해 각 학교가 다양한 특성을 반영한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학생들의 고교 선택권을 넓혀주겠다는 교육부의 의도는 생색내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도 일반고 교육과정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국'영'수가 교과군 총 이수단위의 50%를 넘지 못하게 제한하면 어떻게 될까?
교육부는 고교의 수업이 기초 교과인 국'영'수에 너무 치중되지 않도록 교과군 총 이수단위인 180단위 가운데 절반인 90단위를 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수능시험의 3/4을 차지하는 국'영'수 이수단위를 제한하면 일반고의 경쟁력이 더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현재 일반고의 평균이 88단위일 정도로 90단위 이상을 국'영'수에 배당하는 일반고가 많지 않아 자사고나 특목고에 비해 수능 대비에 불리한 상황에서 이런 제한까지 두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국'영'수 이수단위 평균이 95단위인 자공고는 90단위 제한에 포함시키면서 평균 102단위를 운영하는 자사고는 자율 규제를 권장한 데 그친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적지 않다. 그나마 기초학력을 높여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는 자공고를 사실상 일반고 수준으로 만들어버려 자사고만 좋아지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고 경쟁력이 자사고나 특목고만큼 생길까?
일반고의 교육과정 편성'운영을 자율화'다양화할 수 있다면 학교 현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학교의 본질적인 변화는 교육과정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생색내기 수준의 자율과정 확대, 기초 교과 단위 수 제한으로 일반고의 교육과정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방안'이 나오게 된 것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일반고 위기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대책이 논의되면서 일반고 육성이 주요 교육 정책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일반고가 전체 고교의 대다수(학생 수 기준 71.5%)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학생 선발권'교육과정 자율성 등에서 특목고나 자공고, 자사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으며 일반고가 수준이 낮은 학교처럼 인식이 되고 있는 상황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실효성이 낮은 자율화로 자공고의 경쟁력까지 떨어지게 됐으니 특목고나 자사고를 쫓아가는 것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됐다.
일반고 경우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갖고 있더라도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천차만별인 탓에 전체적으로 평균적인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특목고, 자사고 경우에는 고교 진학과 동시에 균질 집단의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일반고 경쟁력 강화는 이런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방안이 제시될 때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고 학생을 위해 진로직업교육을 확대한다는데?
교육부는 특성화고에 지원했다 탈락해 일반고에 지원한 학생이 작년에만 1만8천983명에 이를 정도로 고교 졸업 후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은 현실을 고려해 진로직업교육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특성화고 정원의 한시적 증원, 일반고 학생들의 진로변경 전'입학 시행, 직업위탁 교육기관 확대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나름 필요성이 인정되는 방안이지만 현실적으로 대상이 되는 일반고 학생의 수가 적을 것으로 예상돼 일반고 경쟁력 강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성화고에 떨어지는 학생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떨어진 학생들 중 몇 명을 특성화고로 전학시킨다고 해서 대구처럼 중학교 내신 최상위권에서 80% 이하까지 같은 학급에서 공부하는 일반고의 현실을 근원적으로 개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사고에는 변화가 있을까?
자사고의 학생 선발 방식은 다소 바뀌지만 큰 틀에서는 달라진 점이 없다. 서울 소재 자사고 경우 내신 성적 50% 이내에서 추첨하던 방식을 1단계에서 성적 제한 없이 1.5배수 추첨한 뒤 2단계 면접으로 선발하는 방식으로 바꿔 2015학년도부터 시행한다. 자기주도학습전형을 시행해온 지방 자사고는 현재 방식이나 서울 방식 가운데 학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비평준화 지역의 자사고(하늘고, 용인외고, 북일고, 김천고, 충남상성고)와 옛 자립형사립고(하나고, 현대청운고, 민족사관고, 상산고, 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는 기존의 학생 선발권을 유지했다.
2013학년도 자사고의 평균 경쟁률이 1.35대 1에 불과할 정도로 1.5배수를 넘긴 학교보다 미달인 학교가 훨씬 많았던 점에 비춰볼 때 자사고 선호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우수 학생이 몰릴 것이라는 주장은 기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자사고가 지금처럼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통해 일반고와의 경쟁력을 보이지 못하면 결코 자사고에 유리한 환경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교육과정에 대한 자율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운영할 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특히 대구 등 광역 단위 자사고 경우 각 학교에 맞는 교육과정 운영 노하우와 진학지도 시스템 정착 여부에 따라 존폐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도움말=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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