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온 누엔 닷 탐(35) 씨와 푸 티 반(30'여) 씨는 2년 전 주변의 친한 사람들을 초대해 작은 식당에서 결혼식을 하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정식 예식장에서 성대하게 올린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이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이들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줬다. 지난해 이 부부에게 사랑의 결실인 아이가 푸 씨 배 속에서 자라기 시작했고, 이들은 한국에서 펼쳐질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 부푼 희망과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출산을 두 달 앞뒀던 올 5월, 암이라는 불청객이 들이닥친 것이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온 한국
누엔 씨는 8년 전 베트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한국으로 왔다. 그가 한국으로 온 이유는 다른 외국인노동자들처럼 '한국에서 돈을 벌어 가난을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누엔 씨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와서 맨 처음 한 일은 서울의 지하철 공사장이었다. 누엔 씨는 그곳에서 2년 동안 용접 관련 일을 했다.
"건설노동자용 취업비자는 기간이 2년입니다. 게다가 연장도 불가능했죠. 하지만 2년 동안 일한 것으로는 베트남에 돌아가도 가난을 면하기 어려웠어요. 결국 2년 동안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한 뒤 경남 김해에 일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내려갔습니다."
김해로 내려간 누엔 씨는 3년 동안 금속공장에서 일을 했다. 이때 부인 푸 씨를 만났다. 누엔 씨는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러 간 자리에서 푸 씨를 만났고, 그때부터 약 9개월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했다. 푸 씨가 누엔 씨의 청혼을 받아들인 이유는 "남편이 착해 보였고 만나 보니 마음의 위로가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누엔 씨가 다니던 공장의 일거리가 줄어들면서 누엔 씨도 다른 일을 찾아야 했고, 고향 사람의 소개로 대구로 올라오게 됐다.
대구에서 누엔 씨는 한 용역업체에 소속돼 성서산업단지의 공장에서 일당받는 파견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한 달에 130만~140만원씩 벌어오는 수입은 큰돈은 아니었지만 누엔 씨 부부가 함께 알뜰하게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푸 씨도 임신 전까지는 대구의 한 휴대전화 부품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결혼 후 임신으로 몸이 무거워지면서 그만뒀다. 이때까지만 해도 누엔 씨 부부는 한국에서 열심히 살면 행복한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불청객으로 찾아온 대장암
누엔 씨는 올 5월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누엔 씨는 갑자기 아랫배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자 병원을 찾았다. 처음에는 배탈이라고 생각해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지어 먹었지만 복통과 설사가 멈추지 않아 더 큰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진찰로는 누엔 씨의 통증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병원에서는 내시경 검사를 권했고, 위'대장 내시경 검사를 모두 받은 결과 대장암 진단이 내려졌다. 출산 두 달 전이었다.
"온몸에 기운이 다 빠졌어요. 암이라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죽으면 아내 홀로 아기를 키워야 하고, 아이가 아빠 없이 자라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텅 비고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병원에서 "수술만 하면 살 수 있다"고 해 누엔 씨는 이달 6일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만 잘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고 했다.
누엔 씨가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는 동안 딸이 태어났다. 하지만 누엔 씨는 병상에 있는 바람에 딸의 백일을 챙겨주지 못했다.
"태어날 때도, 백일 때도 함께하지 못했어요. 아내에게 미안하고 딸에게도 너무 미안해요. 태어나면서 처음 본 아버지의 모습이 아픈 모습이라니…."
◆입원비조차도 해결할 수 없어
누엔 씨는 6일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이달 15일 퇴원했다. 누엔 씨의 입'퇴원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장암 진단을 받고 나서도 누엔 씨는 병원비가 없어 바로 입원하지 못했다. 수술 날짜가 잡히자 누엔 씨 부부는 이곳저곳에 병원비를 빌리러 다니기 급급했다. 남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일을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모아둔 돈도, 수입도 없었기 때문이다.
"저 같은 외국인노동자가 입원하려면 한국 국적의 보증인을 세우거나 보증금을 내야 치료가 가능하대요. 어떻게 보증인을 구하겠어요. 보증금 50만원도 아는 사람들에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빌릴 수 있었습니다. 퇴원하기 이틀 전에도 모자라는 병원비를 대려고 돈 빌리는 게 일이었어요."
누엔 씨 부부가 이런 식으로 아는 사람에게 20만~30만원씩 빌린 돈은 500만원 정도다. 대부분 병원비와 생활비로 지출됐다. 수술비는 대구의료원을 통해 국가에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긴급의료지원금을 통해 해결했지만 수술비를 제외한 다른 병원비는 결국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다.
병원에선 누엔 씨에게 "25일부터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지만 누엔 씨는 항암치료를 받을 돈이 없어 선뜻 확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예상 항암치료 비용은 300만원이 넘지만 빌릴 곳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겐 면목이 없어 더는 빌려달란 말을 할 수 없고, 이주민건강지원센터의 지원과 같은 다른 방법을 찾아봤지만 요건이 되지 않아 지원받지 못했다.
베트남에 있는 누엔 씨의 가족은 누엔 씨가 대장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는 "차라리 베트남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누엔 씨는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갈 비용도 없거니와 돌아가 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요. 가족들을 먹여 살릴 방법이 없습니다. 또 가족들이 저의 아픈 모습 보면서 힘들어할 걸 생각하니 돌아갈 엄두도 안 나고요."
누엔 씨 부부는 아이가 생기면서 꿈꿨던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는 꿈이 점점 무너지는 것 같아 두렵다. 그래도 누엔 씨 부부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다.
"항암치료만 받으면 거의 다 나아 일도 할 수 있대요. 그렇게만 돼도 제가 가족을 돌볼 수 있으니 희망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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