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이 19일 공개한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와 '일본 진재(震災) 시 피살자 명부'에는 3'1운동 당시 애국 인사들의 순국 정황과 관동대학살 당시 참상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유관순 열사, 옥중서 타살"='3'1운동 시 피살자 명부'에서는 유관순 열사에 관한 기록이 우선 눈에 띈다. 유관순 열사의 순국 당시 주소는 천안군 동면 용두리, 순국 장소는 서대문형무소로 나온다.
순국 상황란에는 "3'1독립 운동만세로 인하여 왜병에 피검(被檢)돼 옥중에서 타살(打殺) 당함"이라고 기재돼 있다. 유 열사가 고문에 시달리다가 순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감옥에서 맞아 죽었다는 의미로 조사 당시 이같이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3'1운동 당일 희생자 기록이 바로 옆에 등장한다. 일시는 기미년(己未年'1919년) 3월 1일, 장소는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라고 기재했다. 아우내 장터가 있는 곳을 이렇게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유 열사 부친인 유중권 열사의 기록이 먼저 나온다. 순국 경위는 "3'1운동 독립만세로 인하여 총살당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1987년에 작성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기록과 상당히 일치한다.
보훈처에 따르면 공훈록은 1919년 4월 1일(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의 만세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일본 헌병들이 시위군중을 추격하며 발포하고 칼로 찔렀다고 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 열사와 어머니 '이씨'(李氏)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했다는 것이다.
유중권 열사의 바로 옆에 성명이 '李氏'라고 표기된 여성이 등장한다. 주소'순국 장소'순국 상황란에 유중권 열사와 같다는 기호가 표기돼 있어 유관순 열사의 어머니로 알려진 이소제 열사일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유관순 열사의 어머니가 '이씨'로 표기된 것은 3'1운동 피살자 명부와 마찬가지 기록을 토대로 했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국가기록원은 이씨라는 인물을 일단 미확인자로 분류했다.
희생자 명부에서는 유중권 열사와 이씨를 포함해 20명이 같은 장소'날짜'상황에서 순국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공훈록에 나온 순국자보다 1명이 많은데 이를 토대로 추가 희생자를 파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관동대학살 때 갓난아기 등 일가족 학살='일본 진재 시 피살자 명부'를 보면, 1923년 9월 발생한 관동대지진 때 도쿄 일원에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의 참상이 생생히 드러난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규모 7.9의 대지진이 도쿄 등 일본 관동지방을 강타, 10만5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 대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고 다닌다'는 유언비어가 순식간에 퍼지면서 도쿄와 요코하마 등 관동지방에서 일본 군대'경찰과 유언비어를 믿은 주민들이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당시 피살자 규모는 6천∼2만2천 명으로 추산된다.
명부에는 경남 합천군에 연고가 있는 이모(26) 씨 일가족 4명이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모두 피살당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피살된 이 중에는 두 살배기 갓난아기도 포함돼 있다.
유광준기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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