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마도 망언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는 1635년에 건설된 1.3㏊ 크기의 작은 인공섬이다. 쇄국 정책을 취한 에도 막부가 포르투갈인과 일본인의 접촉을 막기 위해 제한적 교역을 허용한 것이 그 출발이다. 하지만 막부 금지령에도 데지마가 기독교 전파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자 포르투갈인들이 쫓겨나고 대신 1641년 네덜란드 무역지가 되면서 200년 넘게 일본의 서양 교류 창구가 됐다.

상관(商館)은 동아시아에서 널리 통용된 객관의 확장 개념이다. 조선 초 한양에는 외국 사신과 수행원을 수용하는 객관이 여럿 있었다. 중국 사신을 위한 태평관과 여진인의 북평관, 왜인의 동평관이다. 동평관은 종로 남쪽 낙선방의 왜관동, 현재의 충무로에 있었다. 별도로 남해안에 왜인 거류지인 왜관(倭館)이 들어섰는데 우리 사료에 왜관이라는 지명이 등장한 것은 1418년 무렵이다.

부산포와 제포(진해), 염포(울산) 등 삼포왜관이 운용될 때 왜관의 왜인 수가 3천 명이 넘었다. 대부분 장사치였지만 불법 체류자도 많아 크고 작은 문제가 불거졌는데 1510년 삼포왜란이 대표적이다. 숙종 때인 1678년 부산 초량에 새로 들어선 초량왜관은 무려 10만 평에 달했다.

왜관은 단순히 외교 실무와 교역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왜인들은 인삼 씨앗과 뿌리를 몰래 빼내가기도 하고 왜관을 통해 '동의보감'을 손에 넣고 책에 기록된 수많은 조선 동식물 표본과 실물을 구해 생물 실태 조사까지 벌였다. 목면과 인삼, 쌀, 중국 생사 등을 독점 수입하는 과정에서 최대 수혜자는 대마도였다.

최근 느닷없이 대마도를 방문한 오노데라 일본 방위상이 '한국 기업의 대마도 토지 구입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울산의 기업이 지난 6월 구입한 해상자위대 시설 인근 토지 등을 시찰한 뒤 문제의 발언을 했다. 아베 총리도 국회에서 "방위 시설 주변에 대한 외국인의 토지 취득은 안전 보장에 중요한 문제"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는 몇 년 전부터 계속된 산케이신문 등 극우 매체의 '한국 자본이 불순한 목적으로 대마도의 해상자위대 주변 토지를 사들이고 있다'는 악의적 보도가 발단이다. 언론이 여론을 이끌고 정부가 뒤를 미는 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치권의 잇단 망언은 단순히 천박한 역사 인식의 결과만은 아니다. 혐한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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