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울을 우선시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본지에 보도된 몇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
첫 번째는 지난 10년 동안 서울 등 수도권 대학들은 지방대학에 비해 구조 개혁에서 상대적으로 무풍지대였다는 점이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대학의 정원 감소율은 이 기간 연평균 8.3%로 비수도권 대학(20.6%)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서울 소재 대학의 감소율은 5.9%에 불과했다.
두 번째는 주민들의 환경 피해 우려를 덜어주는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에서의 서울과 지방의 격차이다. 서울의 송전선로 지중화율은 88.2%에 이른 반면 대구는 30.2%, 경북은 0.9%에 그쳤다.
세 번째는 정부가 지방신문의 광고비를 대폭 줄여 종합편성채널의 광고비로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국감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중앙 부처의 신문광고 집행 현황은 중앙지 48억 7천만 원, 지방지 10억 원이었다. 그런데 종편이 개국한 2011년의 경우 중앙지는 57억 원으로 소폭 증가했고, 지방지는 4억 5천만 원으로 반 토막 났다. 반면 TV조선, 채널A 등 종편 4사에 대한 중앙 부처 광고비는 2011년 13억 8천만 원, 2012년 52억 6천만 원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서울과 수도권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반면, 지방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는 전반적 사회'경제 구조와 연관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민들의 선택은 '탈지방, 향서울'이다. 지역의 우수한 인재는 서울로 떠나고, 또 그것이 바람직한 현상으로 왜곡되고 있다. 필자가 대학에 진학한 1980년대 후반에는 학급에서 1, 2등 하는 친구들만 서울의 대학에 진학했지, 대부분은 지방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서울 유학을 선호하는 바람에 지방대학의 수준은 과거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서울바라기'는 교수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대구의 한 사립대 교수는 "지역의 교수 가운데 상당수가 서울에 가족을 두고 있다. 과거에는 지방대에 임용되면 가족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일부 교수들은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의 임용 공고를 목 빠지게 기다린다. 대학의 수준이 현재 몸담고 있는 곳보다 못해도 상관없다. 지방대는 교수양성소로 전락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순간 영화 '설국열차'가 떠오른다. 영화에서처럼 지방민들은 열차의 맨 끝 칸에 탄 사람들 같다. 환경이 좋은 곳으로 한 칸이라도 나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지방의 현실과 닮은꼴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그는 책에서 '내부식민지 이론'으로 지방의 문제를 들여다봤다. 내부식민지 이론은 1970년대 남미 종속 이론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국가들 사이에서만 식민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 안에서도 극심한 지역 간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지방분권의 정치경제학'이란 논문에서 지역 모순이 한국 사회에서 독자적인 사회 모순일 뿐만 아니라 계급 모순을 압도하는 주요한 사회적 모순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게다가 거대 매스미디어를 독점하고 있는 '서울제국'은 '서울 중심적 사고'를 대량 생산해 지방의 자립성을 말살하고, 서울 중심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 여파로 지방민들은 '서울의 것이 무조건 가치 있고, 지방은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매몰되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 어찌 지방민들에게 자긍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지방이 이토록 피폐한데도 '서울제국주의자들'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서울과 지방을 구분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선택과 집중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지방의 문제는 비교 우위, 경쟁력, 효율성 등 시장경제 관점으로 봐서는 안 된다. 정의와 형평성의 원칙에서 생각해야 한다. 지방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회적 개입'(정부 정책)이 필요하다. 현대 정의론을 기초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자긍심을 정의 실현의 필수 요소라고 간주했다. 그는 자긍심의 사회적 토대는 정의로운 사회가 평등하게 배분해야 할 기본 가치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박근혜정부가 공약한 '국민행복' 시대에 지방민들은 최소한의 자긍심이라도 지키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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