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차라리, 집도 절도 피붙이도 없는 처량한 신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뜬구름처럼 아무 걸림 없이 떠돌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칼날 같은 세상의 경계에 서고 싶은 적이 있었다. 자유라는 말, 정의라는 말, 그리고 살 만한 세상이라는 말, 그날 위에 서서 스스로 고개 숙여 몸을 던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귀신이 펑펑 울 그런 해원의 詩를 쓰고 싶었다. 천 년의 세월에도 닳지 않을, 언뜻 주는 눈길에도 수만 번의 인연을 떠올려 서로의 묵은 업장을 눈물로 녹이는 그런 詩.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지게작대기 장단이 그리운 이 나이가 되어서야, 고향은 너무 멀고 그리운 사람들 하나 둘 비탈에 묻힌 이 나이가 되어서야, 돌아갈 길이 보인다.
대천 뱃길 끊긴 영목에서 보면, 서해바다 통째로 하늘을 보듬고 서서 토해내는 그리운 노을을 가르며 날아가는 갈매기.
아무것도 이룬 바 없으나, 흔적 없어 아름다운 사람의 길,
어두워질수록 더욱 또렷해.
-유고 시집 『고향 길』(문학과지성사, 2005)
짧지만 가볍지 않은 인생이 보인다. 심혈과 혼신을 기울이고 다 해버린 한 생애가 보인다. 소진과 소멸의 결승선을 향해 모든 것을 던져버린 영혼과 육신이 남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한 줌, 이 시와 같을 것이다. 어떻게 한 생애를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한 생애를 한 편의 시에 이렇게도 남김없이 새겨 넣을 수 있을까. 어디에 이만한 자서전이 있을까.
시위를 떠난 활처럼 살아버린 생이 있다. 자신이 떠나온 길은 지극히 구체적이어서 보일 수 있겠으나 기억에는 없다고 한다. 반면, 돌아갈 길은 지극히 추상적이어서 보일 수 없겠으나 '또렷'하게 떠오른다 한다. 누에처럼, 그리움이 뱉어낸 길은 너무도 또렷해서 되밟아갈 길을 잃는다. 어두워지거나, 눈을 감거나, 죽음 이후에나 돌아갈 수 있는 길이어서 그럴 것이다. 죽음을 '돌아간다'라고도 표현하는 까닭도 얼마간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단, 한, 번, 보았던 영목 노을이 아직 내 기억 속에 있다. 눈물 건너편이다.
시인 artandong@hana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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