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황 속의 리폼 열풍] 리폼의 달인-의류

헌옷 수선 아닌 재창조…유행 맞춰야 명품 리폼

유행은 한순간이다. 지금은 최고라고 자랑하는 것도 유행이 지나면 구닥다리가 된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장롱 행이다. 하지만 경제 불황 속 다듬고 고쳐 쓰는 '리폼'과 수선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멀쩡한 물건을 왜 버려? 고치면 쓸 만한데"라고 말하는 '리폼의 달인'들을 만나본다.

◆의류 수선 명장 김상영 씨

대구 수성구 수성교 근처 '이태리 명품의류 수선전문점' 김상영(52) 씨는 명품 옷 수선 전문가다. 요즘 곳곳에 눈에 띄는 '이태리 명품 수선점'이란 상호를 처음 사용한 장본인이다. 김 대표는 뚜렷한 직업관이 있다. "비싼 명품 옷일수록 유행이 지났다고 옷장 속에 보관해 둘 것이 아니라 꺼내 리폼해서 입으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 대표는 원래 맞춤 양복 전문가였다. 경남 창녕 출신으로 고3 때 친구 형님의 권유로 양복 세계에 발을 디뎠다. "얼굴도 괜찮게 생겼으니 양복 일을 한번 해봐라"는 말에 양복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그 당시 양복기술자는 고객을 직접 대하는 직업이라 얼굴이 반듯해야 하는 것도 양복기술자의 한 자격기준이었다는 것. 고향에서 1년 동안 기본 기술을 배운 후 부산에 진출했다. 맡은 일은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깔끔하게 하는 성격이라 당시 유명 양복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부산 중심가 광복동에서 본격적인 양복기술을 익히고 대구로 입성했다. 당시 연애 중이던 부인 홍외숙(51) 씨가 대구에서 일하고 있어 김 대표도 아예 직장을 대구로 옮겼다. 당시 산업훈장을 수상하는 등 맞춤 양복의 최고봉이었던 중앙통 '김태식 베르가모 양복점'에 취업했다.

김 대표는 "당시 대구에서 가장 유명했던 중앙통 김태식 양복점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고 회상한다. 많은 문하생 중 자신이 김 선생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것. 어느 날 김 선생이 김 대표에게 실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려면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라고 권유했다. 선생의 권유에 자신감을 얻어 1990년 제25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했다.

그 결과 양복 직종 청소년부에서 금상을 받았다. 명실공히 양복기능장으로 최고 경지에 오른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은 김 선생님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때부터 20여 년 동안 '일류 양복쟁이' 길을 걸었다. "그 당시 양복기술자는 정말 인기가 좋았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성패션의 흐름이 기성복 시대로 변화해 갔다. 20년이 넘도록 양복기술 분야에서는 최고라는 자존심으로 일해왔는데 한순간에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변화하는 도도한 물결을 역행할 수 없는 법. 고민 끝에 새 길을 모색해야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자존심을 꺾고 의류 수선점으로 전환했다. 명품 옷과 모피 등 고급옷 리폼을 전문으로 하는 '이태리 명품의류 수선전문점'이라고 간판을 달았지만 맞춤 양복 분야의 최고 기술자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수선일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피 전문가인 아내를 설득, 수선 일터로 끌어들였다. 맞춤 양복 전문가라 의류 리폼 일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의 트렌드를 분석, 고객의 체형과 스타일에 맞게 감각적이고 세련된 옷으로 재탄생시켰다. 고객들이 솜씨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이제는 의류 분야에서 리폼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며 "리폼 기술력에 따라 옷 맵시가 달라진다. 그래서 수선가게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고 설명한다. 명품 옷 리폼 전문가로 소문이 나면서 요즘 서울은 물론 일본에서도 택배로 주문 의뢰가 오기도 한다. 부인 홍 씨는 "패션에서 '리폼'은 단순한 수선이 아니라 완전히 해체해서 새로 옷을 만드는 과정"이라며 "리폼 비용도 천차만별이지만 새로 사는 것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새로운 느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유행 지난 코트의 리폼은 10만원, 양복 상'하의 전체 리폼은 10만~17만원 정도다. 수선문의는 053)751-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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