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황 속의 리폼 열풍] 리폼의 달인-구두

앞뒤 굽 고쳐 달라는 멋쟁이 여성들이 주요 고객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동성로에서 구두 수선을 하는 정정식(66) 씨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라는 동요가 생각난다. 뚝딱! 뚝딱! 고객이 맡기고 간 헌 구두를 그는 단 몇 분 만에 깔끔한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손마디마다 굳은살이 배어 뭉툭하고 거칠다.

◆동성로 구두수선 전문가 정정식 씨

대구의 한복판인 동성로 대구백화점 본점 옆 골목에 정 씨의 구두수선점이 있다. 빨간색의 대구시 관광안내소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3.3㎡ 남짓한 좁은 공간인 이곳이 정 씨의 일터다. 365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이곳에 출근한다.

정 씨는 일하는 내내 좀처럼 말이 없다. 오죽하면 주변에서 '곰'이란 별명을 지어줬을까? 신발을 맡기는 고객의 주문사항을 들은 후 몇 분 후에 찾아가라는 대화만 오간다. 오랜 단골손님인 류기옥(53·동구 용계동) 씨는 "구두 고치는 솜씨가 좋아 20년째 단골"이라며 "워낙 오랫동안 거래해 편하기도 하고 간단한 것은 무료로 고쳐주기도 한다"고 한다.

김천시 대덕면에서 태어난 정 씨는 4남매 중 맏이다. 중학교 진학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고향에서 생활하다 대구로 들어왔다.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서였다. "큰 도시로 나가면 무엇이든지 할 일이 있어 배는 곯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러나 쉽게 일자리를 잡지 못했다.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동성로 주변에서 맴돌다 구두 닦는 일을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구두를 닦는 일을 어깨너머로 배워뒀기 때문이었다. 그때 시작한 구두 일이 평생 직업이 됐다.

처음 시작할 당시인 40여 년 전에는 지금보다 수입이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수입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는 정신으로 묵묵하게 일할 뿐이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돈벌이가 된다는 생각이다. 고객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낡은 굽을 갈아 달라거나 닳은 구두 밑창을 새로 붙여달라는 주문이다. 여자 구두는 뒷굽 갈이 3천원, 앞 굽 수리는 8천원이다. 솜씨가 빠르고 믿음직스러워 한 번 온 고객은 곧장 단골이 된다.

정 씨는 대구의 번화가 동성로에서 40년 넘게 자리 잡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수년 전 동성로 공공디자인 개선 사업으로 노점상들이 모두 외곽으로 내몰릴 때 정 씨도 터전을 옮겨 대백 옆 골목에 터를 잡았다. 한 평 남짓한 번듯한(?) 작업실을 마련했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 길거리 장사 때보다 손님이 많이 줄었다.

"구두수선의 명장이라고 입소문이 났는데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하자 "명장은 무슨, 별다른 재주가 없어 그냥 이 일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정 씨가 첫 구두 수선일을 시작한 후 10년 동안은 부모님과 아내조차 몰랐다는 것. 스물여덟 살 때 맞선을 보고 회사원이라고 말하고 결혼했다. 돈을 모아뒀다가 한 달에 한 번씩 봉투에 넣어서 월급이라고 갖다 줬다. 어느 날 아내의 친척이 동성로 길거리에서 일하는 정 씨의 모습을 발견하고 아내에게 일러바쳤다. 집안에 야단이 났다. 하지만 워낙 성실하게 일하는 가장인데다 벌이도 쏠쏠해 아내도 곧 이해했다. 요즘은 가끔 아내가 정 씨의 일터에도 나오는 등 협력자로 변했다.

정 씨는 평생 구두수선일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그저 36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묵묵하게 구두 고치는 일만 한다. 설날과 추석 등 명절에도 손님이 있든 없든 가게 문을 연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인데다 체력이 되면 평생 일할 수 있어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며 애착을 가진다.

그래서 요즘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한다. 하루 일을 마친 후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다진다. 그는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구두 수선일을 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문의 053)422-3950, 011-1765-4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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