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문양의 Food 다이어리] 나의 소울 푸드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작년에 재미있게 읽은 여러 작가의 마음의 식탁을 담아 엮어 낸 책 제목이기도 하다.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찾아오는 11월 중순은 내 영혼이 가장 허기지는 시기이다. 그래서 봄부터 여름 동안 한껏 다이어트 해서 관리해 둔 몸매가 11월 한 달 동안 월동대비를 하느라, 지방과 탄수화물을 마구마구 축적해 댄다.

나의 소울 푸드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나나, 주먹밥, 초밥, 오뚜기표 육개장과 오징어짬뽕…. 초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바나나였다. 어머니께서 교동시장에서 부르뎅 아동복과 함께 사다 주신 델몬트 딱지가 붙은 바나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란색의 매끈한 껍질을 벗기면 향긋한 바닐라향이 더 진하게, 다 먹고 나서 껍질을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다. 대학교 입학 후 첫 소개팅에서 만난 남학생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서슴없이 바나나라고 대답을 하였다. 줄리앙 석고상처럼 생긴 뽀얀 피부를 한 그 남학생은 카페에서 잠시 사라진 후, 야구 글러브 모양의 바나나 한 송이를 들고 나타났다. 요즘 초등학생부터 주부까지 열광하는 드라마 '상속자'에 나오는 김탄보다 더 멋진 모습이었던 같다.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흘러나왔고, 나는 하나에 2천원이나 했던 그 비싸고, 달콤한 바나나를 원없이 먹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고 했던가. 가장 마음이 고단했던 시절 함께했던 음식은 참으로 마음의 위안이 되어 준다. 일본유학 시절, 남편이 한국으로 먼저 귀국하고, 혼자 남은 나는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다. 닝닝한 일본식 학교 기숙사 식당의 맛에 질린 나의 탈출구는 오징어짬뽕라면이었다. 향수병을 처방해 줄 최고의 약이었다.

기숙사의 세면실 옆에는 토스터기와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기숙사의 식사시간을 놓친 학생들이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거나, 간단하게 간식을 조리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해 둔 것이다. 그곳에서 비가 오는 날엔 나는 오징어짬뽕라면을 끓인다. 얼큰한 한국의 맛을 한방에 해결해 줄 나만의 레시피이다.

오뚜기표 액상타입의 옛날 육개장 한 봉지에 물을 조금 더 넣고, 라면스프는 반 만 넣는다. 국물이 끓어 오르면 라면을 넣는다. 신라면, 안성탕면 다 해 보았지만, 오징어짬뽕이랑 가장 맛이 어울린다. 계란은 반드시 넣어준다.

종갓집 맛김치도 한 봉지 꺼낸다. 다행히도 같은 방을 쓰고 있던 룸메이트 미호짱은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김치냄새, 마늘냄새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첫사랑의 추억처럼 난 귀국 후 단 한 번도 육개장 오징어짬뽕라면을 끓여 먹지 않았다. 내 청춘의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도 곰탕을 먹을 때면 유학시절 이야기를 한다. 소 다리뼈 하나에 100엔. 항상 곰탕을 고아대셨던 할머니 덕에 20만원 정도 들어야 제대로 된 곰탕 맛을 낼 수 있었던 것을 알았던 그 당시. 도쿄에서 우리 부부는 질리도록 곰탕을 먹었다. 동네 정육점에 미리 부탁을 하면 살 수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소뼈를 잘라주지 않고 그대로 줘서, 곰탕용으로 커다란 찜통을 새로 장만했다. 처음에 소뼈를 통째로 넣고 고았다. 24시간 하루 종일 고았는데도, 뽀얀 국물이 우러나오질 않았다. 우리는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서, 소뼈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소다리에 금을 낼 심산으로 남편이 제의한 일이었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였고, 잊지 못할 추억이다. 정육점 총각 직원은 나의 에피소드를 듣고, 거래처에서 부탁을 하여 소뼈를 잘라다 주었다.

내가 아침에 자주 끓여주는 무와 양파를 듬뿍 다져넣고 끓이는 야채소고기죽은 우리 아이들의 소울 푸드로 채택될 수 있을까?

푸드 블로그 '모모짱의 맛있는 하루' 운영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