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우 우리금융그룹 회장을 만나기 위해선 적지 않은 기다림이 필요했다. 좀처럼 집무실에 앉아 있지 않은 그의 업무스타일 때문이다. 그는 보통 아침 7시 중요한 결재가 끝나면 바로 고객들을 만나기 위해 영업 현장으로 달려간다. 현장 방문은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다. 최근엔 저녁 식사 약속이 3번 이상 잡힌 적도 있다고 했다.
비서실 한 관계자는 "취임 초기에는 취임 인사 때문에 그러려니 했지만 갈수록 점입가경"이라며 "부하직원들이 긴급현안에 대해 보고를 해야 하는데도 자리에 계시지 않아 발을 동동 굴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이 회장은 명함이 4종류이다. 일반 명함, 고객을 위한 명함, 가톨릭식 명함, 장애우를 위한 점자명함 등 만나는 고객마다 달리 사용한다. 철저한 고객관리를 위해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모든 명함 뒷면에는 "고객님을 섬기겠습니다"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90도 인사도 섬김을 실천하는 것이다.
1950년 경주 산골에서 태어나 대구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1977년 상업은행에 입행해 2011년 3월 은행의 꽃인 행장 자리에 올랐다. 1999년 IMF 사태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 직후 초대 인사부장을 맡아 조직 융화의 토대를 마련했고, 2002년 기업금융단장으로 당시 LG카드 구조조정 실무를 진두지휘했다.
2004년 우리은행 개인고객본부 부행장과 수석 부행장을 역임하고 2011년 3월 내부 출신으로는 두 번째 은행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 우리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이순우 은행장을 회장 내정자로 발표했다. 이로써 이순우 회장은 말단 은행원에서 시작해 행장을 거쳐 지주회사 회장에까지 오른 국내 첫 사례가 됐다.
◆CEO로서 리더십
보통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접견실에는 고가의 미술품들이 벽면에 걸려 있다. 하지만 이순우 회장의 접견실 벽면엔 은행 적금 상품 포스터들이 걸려 있다.
은행장실을 방문하는 인사들은 은행으로서도 최고의 VIP라는 생각에 2011년 은행장이 되면서 내걸었다. 회장이 된 뒤에는 은행 상품 가입 신청서까지 갔다 뒀다.
이 회장을 옆에서 지켜봐 온 임직원들이나 행장 시절 지방 기업방문과 해외 출장길에 그를 수행했던 임원들은 "잠시도 쉬지를 않는다"며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나오는지 신기하다"며 혀를 내두른다. 36년을 은행원으로 살아오면서 그가 한결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이 회장에 대한 그룹 임직원들의 신뢰는 굳건하다. 36년간 우리은행이라는 한 회사에 몸담은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격의 없는 인간관계를 형성한 까닭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 회장과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마치 10년을 알고 지낸 것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직원들의 상(喪)을 꼼꼼하게 챙긴다. 특히 처가상(喪)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상가에 사위가 일하는 곳의 사람들이 찾아오면 큰 힘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은행장으로 취임한 직후 한 직원의 상가를 방문했는데 해당 직원이 소속된 부서의 임원들이 보이지 않자 다음 날 임원회의에서 그 임원에게 엄하게 꾸짖었다고 한다. 올해 초 만년 꼴찌를 달리던 우리은행 한새여자농구단이 7년 만의 통합챔피언 등극에 1승만을 남겨두었을 때, 경기 바로 전날 갑작스레 모친상을 당한 전주원 코치의 상가를 마지막까지 지킨 사람도 이 회장이었다.
◆평소 강조하는 '온실론'
이 회장은 최근 그룹 전략회의에서 "나무를 크게 자라게 하려면 옮겨 심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큰 폭풍(IMF)이 지나간 후에 죽어가는 여러 나무들(부실화된 금융기관들)을 하나의 온실(우리금융그룹)로 옮겨서 살려낸 경우와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무들이 온실 속에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더 크고 잘 자라기 위해서는 바깥세상으로 옮겨 심어야 하듯이 우리금융그룹 역시 더 큰 발전을 위해 이제는 민영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민영화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지난 7월 하반기 우리금융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 이 회장은 참석한 모든 직원들에게 구두를 선물했다. '마지막' 회장으로서의 많은 고뇌가 담겨 있는 선물이었다. "구두가 이별의 의미가 있어서 연인 사이에서는 구두 선물을 잘 안 한다고 하지만 사실 구두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니 오해하지 말라"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이어 "자신 역시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앞으로 똑같은 구두를 신고 열심히 뛰어 다닐 테니 우리금융그룹 임직원 모두가 함께 더 열심히 뛰어보자"고 강조했다.
민영화만큼 그의 속앓이를 시킨 것도 없을 것이다. 그는 "회장직이라는 것이 37년 은행원으로서의 명예와 맞바꿀 만큼 그렇게 매력적인 자리도 아닌 것 같다"며 "가끔 왜 이런 힘든 시기에 회장직을 맡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경영철학
이 회장의 평소 경영철학은 '현장경영'이다. 1977년 상업은행 을지로지점 말단 행원으로 시작해 36년 만에 우리금융그룹회장에 오르기까지 은행 전반의 업무를 두루 섭렵한 그는 소위 '영업통'이다. 모든 영업의 해결책은 결국 고객과의 접점인 현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항상 고민하고 직접 찾아다니면서 눈과 귀로 보고 듣는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십여 개 이상의 업체를 방문하는 이 회장은 전용차를 다인승인 카니발로 바꿨다. 바쁜 일정상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목적도 있지만 고급 세단을 타고 중소기업을 찾는 건 고객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이 회장과 카니발은 총 30만㎞를 달렸다. 그렇게 고객을 만나기 위해 현장을 부지런히 뛰는 그의 열정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2011년 우리은행장에 취임 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영업 현장 방문용 점퍼 제작이었다. 그는 취임 후 틈만 나면 정장 재킷 대신 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입고 시장과 중소기업을 방문한다. 은행장 취임 후 2년간 그가 직접 방문한 고객은 약 400여 곳에 달한다. 한 번은 한 중소기업을 찾았는데 이렇게 은행장이 점퍼를 입고 직접 방문한 건 처음이라며 업체의 대표가 놀랐다고 했다. 애로사항을 듣고 은행이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하고 나오는데 80대의 경영자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고맙다며 이 회장을 꼭 껴안아 줬다고 한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m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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