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송엔 이겼지만… 평생 불구는 누가 책임지나요

포항 의료사고 피해 50대의 절규

의료분쟁 소송에 져 거액의 배상금을 환자에게 물게 된 포항ㅅ병원 모습. 신동우기자 sdw@msnet.co.kr
의료분쟁 소송에 져 거액의 배상금을 환자에게 물게 된 포항ㅅ병원 모습. 신동우기자 sdw@msnet.co.kr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심장'정형전문병원으로 지역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얻고 있는 포항 ㅅ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은 후 인생 전체가 망가진 A(53) 씨의 전화기는 매번 꺼져 있다. 한때 유도선수로 촉망받았고, 포항시 공무원(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자부심을 가졌던 그가 세상과 단절하게 된 것은 2011년 4월. 그는 이 무렵 목 뒤에 따가운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그저 단순히 염증을 제거하면 될 것이라는 판단이 그의 평생을 뒤바꿀 운명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수술이 끝난 후 마취에서 깨어난 A씨는 온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몸 전체가 움직이지 않는 마비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순간에 내 인생을 잃어버렸다"고 아무리 하소연해도 병원 측은 "수술 과정상 문제 없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A씨 가족의 힘겨운 의료소송은 이렇게 시작됐다.

◆의료소송을 시작하다

법은 녹록하지 않았다. 의료 과실 소송은 피해자 가족이 병원의 진료'감정 기록을 확보한 뒤 의료기관을 상대로 복합적인 법리 해석을 거쳐 사고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소송 자체가 쉽지 않다. 소송 기간도 평균 2년을 넘는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법에 호소하기 전, 부담을 덜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찾으려 했지만 조정신청을 강제할 수 없는 탓에 이도 그만뒀다.

포항지역 한 변호사는 "의료계가 추정하는 연간 의료사고는 3만 건이 넘는다. 의료중재원에 5% 정도 접수되는 것으로 아는데, 이를 감안하면 대다수 피해자들이 의료사고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와 가족들은 한순간에 인생이 날아가 버린 것이 억울해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안고서라도 의료소송을 진행할 결심을 굳혔다. 그는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2년간의 병가기간이 끝났고, 끝내 회복되지 못한 채 올해 5월 직장을 그만뒀다. 매달 300만원에 달하던 월급도 병원에 있는 동안 130만원밖에 받지 못해 생활고가 가중됐다.

멀쩡한 몸을 한순간에 못쓰게 된 본인도 아팠지만, 가장이 직장을 잃게 돼 가족들은 망연자실했다. 특히 부인은 평생 그의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처지가 돼, 퇴직 후 행복하게 여행이나 다니자고 했던 꿈을 가슴에 묻으며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포항의 의료사고는 대부분 분쟁 전 혹은 분쟁과정에서 합의로 마무리된다. 포항 모 대형 산부인과에서는 출산과정에서 신생아의 대퇴골이 골절되고, 산모가 사망했지만 합의금을 주고 해결했다. 병원 이미지와 앞으로의 고객유치를 고려해 병원들이 법원 문턱에 가기 전 돈으로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A씨는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위해 의료소송을 결정했지만 주변에서는 무모한 싸움이라고 여겼다.

A씨는 소장에서 "나 혼자 걸어서 건강하게 병원에 갔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일은커녕 혼자 움직일 수도 없다.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막대하고, 평생 아내가 불편한 몸을 돌봐야 하니 그에 따른 손해배상(10억1천만원)을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수술과정에 문제는 없었다"며 의료과실을 부인했다. 재판과정에서 다른 병원의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에서 증언한 의사들도 병원 측의 주장에 가깝게 의견을 내놓았다.

A씨는 2년이 넘는 소송을 끌며, 마지막으로 법원이 자문을 얻기 위해 구성해 놓은 전문심리위원에게 기대를 걸었다. 변호사 측은 병원과의 이해관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종교와 대구'경북권(지연), 학연(대학) 등과의 관계를 철저히 배제한 채 타지역에서 의사로 일하는 전문심리위원을 요청했다. 이렇게 선임된 위원은 "본인이 경험한 바에 따르면 A씨의 경우 마취과정이나 수술과정에서 환자의 책임이 아닌 외부요인으로 인해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는 소견을 내놓아 병원 측의 과실을 간접 시사했다. 법원도 이 위원의 판단을 받아들여 A씨의 일부 승소를 결정했다.

◆ 재판에는 이겼지만…

A씨는 병원 측의 과실을 일부 밝혔지만,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서글픔에 세상과 벽을 쌓고 있다. 직장동료 민영종 씨는 A씨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태권도 유단자(4단)에다 유도선수로, 누구보다 건강했던 그가 갑작스레 불구가 된 것은 누가 봐도 병원의 과실인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다며 분노를 토했다. 민 씨는 "병원에서 손해배상을 받게 됐다고는 하지만 그 친구 인생은 누가 보상해주나. 성실했고 예의 발랐던 동료의 아픈 모습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병원 측의 일부 과실이 판명난 이상, A씨와 비슷한 사례를 겪은 이들의 줄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특히 이번 선례를 중심으로 법적인 싸움을 진행한다면 피해 환자들에게 보다 유리한 보상이 가능해질 전망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을 진행한 신용길 변호사는 "의료분쟁은 병원 측에서 주도하는 경우가 많아 개인환자들이 (소송에) 엄두를 못냈다. 대형 병원과의 싸움에서 환자가 보상을 인정받은 사례가 나온 만큼 환자들의 권익이 보다 신장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관리공단 포항지사 측은 "포항에서 이와 같은 사례가 없어 포항 ㅅ병원의 의료분쟁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병원 측의 과실이 인정된 만큼 해당 환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분에 대한 환수는 물론이고 병원 측에 지급된 전체 보험금의 건전성 여부도 따져 묻겠다"고 말했다.

포항'박승혁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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