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건축인의 자성과 미래

인류가 만들어낸 불멸의 유산 중에서 가장 많은 대상이 바로 건축이다. 흔히 건축은 '인간의 생활을 담는 그릇'이라 하거나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 건축이 자산적 가치를 지니면서 그 의미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변하였다.

나는 지방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어렵게 모교의 교수가 되어 후배이자 제자인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30여 년간 참으로 보람되고 행복하게 살아왔다. 부끄럽지만 돌이켜 보니 나름대로 연구업적도 쌓았고 수많은 제자를 두었으며 교수랍시고 적은 지식으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많이도 써 먹었다. 또한 어려웠던 시절 힘들게 공부하여 성공한 제자들을 보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러나 요즘처럼 제자들을 보기가 민망한 때가 없다. 철밥통이라는 교수로서 너무나 안이하게 지내다 이제야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입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면접에서 왜 건축과를 지원했느냐고 물으면, 우리 시대를 이끌어 갈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하던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입시생을 기억한다. 물론 진정으로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 온 것보다는 본인의 성적에 맞추어 지원한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근래 한국 건축계의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아 이들에게서 밝고 원대한 직업인으로서 미래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50을 갓 넘긴 한참 일할 나이에 벌써 직장을 그만둔 동문들이 많고,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녀도 원하는 곳에서 반기는 곳이 드물다는 것이다. 이런 이들을 위해 교수가 무엇을 해주었고 해줄 수 있는가 생각하니 답답하다.

다 지난 얘기이지만 10년 전쯤에는 건축과 지망생들의 성적이 공학계열에서 최고였다. 심지어 의과대학 수준을 추월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취업률은 고사하고 학생들의 성적도 최하위이다. 언제부턴가 교육대학으로 옮겨가는 여학생도 생겼다. 건축과 학생들의 로망은 공무원이나 의학계전문대학원 진학이다. 건축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 하였는데 정말 사회상을 나타내는 계측기가 되고 있다.

국가발전의 원동력이었던 건설산업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 같다. 대도시의 아파트는 줄 서서 사려 했고 부의 척도가 되었는데 이젠 팔리지 않아서 난리다. 경향각지에 있는 건설사들은 부도가 나고 사라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국민소득 2만달러 정도까지는 국가주도의 SOC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우리나라도 이젠 도로, 항만, 공공건축, 국민주택 등 할 만한 일은 많이 한 셈이다. 건설 부문이 국민총생산의 25% 가까이 차지하고 수백만 명의 건설일꾼이 일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복지와 교육 부문이 더욱 크게 차지하고 있다. 서구의 선진국가에서 건설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미만이라 하니 우리의 건설산업은 더 힘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근자에 회자되는 몇몇 사건들은 건축인들의 자존심을 더 상하게 한다. 건설산업의 일환인 4대강 사업은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고, 숭례문 복원과정에서는 자조적인 한탄도 들린다. 이는 전적으로 건축인들의 탓이다. 건설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정말 뼈아프게 자성하고 새로운 사고를 하여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국내에서 새로운 시장이 나타나지 않으면 외국시장이나 통일 후 북한지역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외국 건설시장도 우리의 인건비가 높아 경쟁력이 없다. 인구 비례 건축학생수는 우리나라가 제일 많다고 한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건축과 학생들이 진출할 곳이 어디 있겠는가. 건축이 아름답지 않고 위대한 과업이 아니라면 어느 학생이 자신의 미래를 걸고 건축학과로 진학하겠는가.

그러나 기회는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우선 건축인들의 수를 줄여가야 한다. 또 새로운 건축적 장르를 찾아내야 한다. 초고층 건축, 에너지 제로 건축, 친환경 건축과 지속가능한 건축도 가능성이 높은 분야이다. 스마트빌딩, 생체지향적 건축도 미래가 밝다. 특히 근자에는 도심활성화 시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옥 건축도 세계시장을 넘나들고 있다. 온돌을 쓰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추운 나라에서 온돌만큼 매력적인 난방방법은 없다.

사막에서 외화를 벌어들여 국가건설의 밑거름을 하였던 건설역군들의 건투를 빈다.

천득염/전남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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