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저질 진료를 권장하는 정부

전 세계에서 원격의료를 대다수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의료비 개인 부담은 높아지는 반면, 치료 효과에 대한 안정성과 실효성은 담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격의료를 하면 환자들은 더 편해지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안전하지 않아 결국은 병원에 가야 한다. 전 세계에서 어떤 나라도 지금 한국 정부가 계획하는 것처럼 수백만 명을 대상으로 원격의료를 시행하지 않는다. 설사 안전하다고 해도 정부가 원격의료가 필요한 사람들로 선정한 노인, 장애인 등은 컴퓨터 사용이나 원격진료 단말기 사용이 더 불편할 수도 있다. 개인 정보의 분실 내지 유출 우려도 크다.

원격의료는 진료비가 더 싸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비싸다는 것이 문제다. 각 가정에서 원격의료 장비를 갖추는 데 필요한 돈만 하더라도 최소 100만~150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유지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비용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다. 벌써 재벌과 병원들은 원격의료 진료비를 높게 책정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미 SKT, KT, 삼성전자 등 IT 기업들은 원격의료의 기반이 되는 유헬스 사업에 수백, 수천억원을 투자했고 투자할 예정이다.

병원에 자주 가야 하는 만성질환 환자와 도서'산간 지역 주민들에게는 필요한 제도라는 주장도 있다.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의료계 종사자들의 의견이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다양한 합병증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한 지속적인 상담과 합병증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만성질환 환자들의 건강관리를 단순히 혈당 수치와 혈압 등의 데이터 전송만으로 원격으로만 처방하게 되면 약물 조절에만 의존하게 될 우려가 높다. 병원이 없는 도서'산간 지역 주민들도 약물치료 외에 건강 관리 및 다양한 건강 상담을 받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정부가 원격의료를 운영할 돈이 있다면 병원이 없는 도서'산간 지역에 우선 의사를 배치해야 한다.

그런데 왜 대기업인 삼성전자나 LGU, SKT, KT 같은 재벌들이 원격의료를 찬성하는가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실 이 IT 업체들은 원격의료 도입 추진 세력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원격의료를 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었다. 그동안 호황을 누렸던 핸드폰, 통신 사업의 대체 품목으로 새로운 상품이 필요해진 재벌 IT 기업들이 이른바 '건강 관리'를 새로운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원격의료와 건강(생활) 관리 서비스인 것이다.

물론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국가 등에서도 원격진료를 한다. 그러나 미국은 병원이 들어서기 너무 어려운 사막이나 북극 지역 그리고 전쟁으로 해외에 파병되어 있는 초소 근무 군인들에 한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왜 정부는 자꾸 원격의료를 하려고 하는가?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원격의료를 추진하겠다고 하는 진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헬스와 원격의료'를 꼭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헬스와 원격의료를 '창조경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들에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 줄지 몰라도, 국민 개개인에게는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것이고 민영화된 의료 제도를 안겨주게 될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의료 민영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려 한다. 마치 대기업과 대형병원들 좋은 일만 시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노인, 장애인, 도서'벽지 주민들이 편하게 의료를 이용할 수 있는 체계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원격진료로 해결할 수는 없다. 원격진료를 허용하겠다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덮겠다는 것이다. 원격의료는 환자들에게 안전한 대안도 아니고 의학적 대안도 경제적인 대안도 될 수 없다.

김종서/대구시 의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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