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후쿠오카 멘타이코

한국 명란젓 건너온 지 60년, 제조법 공유해 특산물 우뚝

일본 후쿠오카 특산물 멘타이코(明太子)는 일본인들의 밥반찬으로 예나 지금이나 부동의 인기 1위를 지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문제로 한국 수산물 업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후쿠오카 멘타이코는 되레 남의 나라 일인 듯 무풍지대이다. 후쿠오카 시내 멘타이코 전문 전통음식점에는 매일같이 자리를 얻으려는 손님들로 길게 줄이 이어진다. 상품 판매장도 마찬가지로 손님들이 몰려 연일 장사진이다. '후쿠야'라는 한 업체만 해도 연간 판매고가 1천500억원이나 된다. 이 신기루 같은 인기를 누리는 멘타이코는 원래 우리나라 명란젓. 1946년 해방 직후 부산에 살던 한 일본 상인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후쿠오카 특산물이 됐다.

◆명태알(明太子) 만큼은 후쿠오카가 일본의 수도

후쿠오카 전통 향토식품 멘타이코 전문 생산업체인 후쿠야의 지난해 매출은 150억엔에 이른다. 후쿠야의 매출액은 2011년 155억엔, 2010년에는 161억엔을 기록했다. 후쿠야는 올해 창업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튜브에 넣은 멘타이코를 선보이는 등 다양한 새상품을 출시하며 연매출 200억엔을 목표로 세웠다. 1946년 후쿠오카 시내 나카스라는 곳에서 작은 식료품 가게를 시작으로 출발해 올해로 67년째를 맞은 이 회사는 직원 수만 600여 명이다. 한국의 명란젓을 특산화시켜 후쿠오카 향토 음식으로 산업화한 멘타이코의 원조 업체다.

후쿠오카 멘타이코는 가와하라 토시오(川原 後夫)라는 사람에 의해 탄생됐다. 원래 일본에서는 명란젓을'타라코' 라고 했는데 가와하라 씨가 한국의 명란젓을 일본에 도입하면서 명태알이란 뜻인 멘타이코(明太子)라고 이름을 바꿨다. 김치가 '기무치'가 되고, 떡볶이가 '도보키', 삼계탕이 '사무계탕'으로 바뀐 것과 마찬가지다. 가와하라 씨는 일제 강점기 시절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인 치즈코 씨도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다. 해방 후 일본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 부산에서 먹었던 매운맛의 한국 명란젓을 기억해 내고 이를 아이템으로 만든 상품이 바로 멘타이코다.

멘타이코의 인기를 피부로 느껴보려면 후쿠오카시 하카타구 나카스 거리에 있는 60년 전통의 후쿠야 나카스 본점을 찾아가면 된다. 이 가게는 멘타이코를 사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새통이다. "창업 당시의 맛이나 지금의 맛이나 멘타이코의 맛을 변함없이 지켜오는 것이 저희 후쿠야의 전통입니다." 밀려드는 손님으로 잠시도 쉴 틈이 없는 후지이 야요이(50) 나카스 점장은 "제조에서 판매까지 엄격한 품질관리로 맛의 원점을 유지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얼얼한 매운맛이 느껴지는 모양'을 뜻하는 일본 의태어로 '멘타이 삐리리'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후쿠오카 향토특산품 멘타이코는 일본 전역에서 60년이 넘도록 유명세를 떨쳐 왔다.

◆2대째 이어가는 가업, 후쿠오카 멘타이코 원조 후쿠야

"한국 사람들은 멘타이코를 다 잘 아시잖아요. 바로 명란젓갈이에요." 후쿠야 공장 내부를 안내하는 요시다(吉田'45) 씨는 한국말을 곧잘 했다. 남편이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멘타이코의 원료인 명태는 베링 해와 알래스카 열도, 오호츠크 해에서 잡는다. 12월부터 4월까지 날씨가 추울 때 연중 사용량을 전부 잡는다. 요시다 씨는 알은 멘타이코를 만들고 살로는 어묵도 만들고 뼈는 사료나 비료를 만들기 때문에 명태는 버릴 게 없는 생선이라고 자랑했다.

명태 알이 처음 생기기 시작하는 가무코 상태는 미성숙란으로, 멘타이코를 만들 수 없다. 조금 더 자라 성숙란인 마코 상태가 가장 좋다. 여기서 더 자라면 산란 직전의 미즈코가 되는 데 이때는 완숙란이라고 해서 색깔이 검어지고 물기가 빠져 껍질만 남기 쉬워 멘타이코 원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공정은 납품받은 알을 해동해서 깨끗하게 씻는 세정과정을 시작으로, 1차 이물제거, 조미, 염장, 혼합, 숙성, 2차 이물제거, 선별, 관능검사, 금속 이물 검사를 거쳐 상품으로 포장된다. 원료의 사전검사도 까다롭다. 원료 명란은 해동, 맛검사, 세균검사, 관능검사를 거쳐 입고된다. 생산 인력들이 마스크와 방진모, 방진복을 착용하고 고무장갑과 출입문 에어 샤워에 이르기까지 공장 내부는 마치 반도체공장의 생산라인 같다.

"직원들은 매일 출근 때마다 체온을 측정합니다. 환자가 생산라인에 들어가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후쿠야 홍보팀장 하마카미(28) 씨는 "전 과정은 소독물로 씻은 후 생산이 시작된다"며 엄격한 품질관리를 강조했다. 모든 포장 상품은 폐쇄회로 카메라로 촬영해 6개월 동안 영상자료를 보관한다. 창업자 가와하라 씨는 1980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부인 치즈코 씨가 남편으로부터 후쿠야 회사를 이어받았다가 지금은 삼남인 카와 마사하카(川原正孝'64) 씨로 전해져 2대째 이어가는 가업이 됐다. 멘타이코로 출발해서 지금은 토리라는 이름의 멘타이코 과자와 멘타이코 센베이도 만들었다. 나카스 본점에는 멘타이코를 말려서 과립처럼 만든 병 제품과 김 가루와 명태알을 함께 건조시켜 밥에 뿌려 먹도록 한 상품도 진열되어 있다. 사케, 소주, 인형, 손수건, 밥상보, 열쇠고리, 천지갑, 목도리, 카드, 라멘 등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자매품도 생산하고 있다. 창업자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생산한 하쿠타이노 카카쿠라는 100년 동안 한결같다는 맛을 상징하는 상품이다. 하마카미 씨가 권하는 하쿠타이노 카카쿠라는 300g에 무려 5천250엔, 명태알 8개에 우리 돈으로 5만7천300원이다.

◆후쿠오카 멘타이코 이름은 우리나라 명태가 어원.

명란젓 자체는 일본에서도 에도시대 때부터 먹었다. 하지만 후쿠오카의 명물이 된 멘타이코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후쿠야가 창업된 1946년이 시작이다.

명태라는 생선 이름의 유래는 조선 후기 문신인 이유원(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시작된다. 함경북도 명천(明川)이라는 고장에 태(太) 씨라는 성을 가진 어부가 있었는데 그가 처음 잡은 생선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 어부는 잡은 생선을 고을 원님에게 가져갔는데 생선을 맛있게 먹은 명천 원님이 '명천에서 태가가 잡았으니 지금부터 명태라고 하라'고 해서 이름이 명태(明太)가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를 보더라도 명태는 순수한 우리 생선이름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은 이 명태를 일본식으로'멘타이'라고 불렀고 후쿠야를 창업한 가와하라 씨가 명태에다 알이라는 뜻의 아들 자(子)를 붙여 '멘타이코'라고 한 것이다.

후쿠야 회사에서 올해 신상품으로 개발해 선보인 튜브에 넣은 멘타이코는 매운맛의 강도를 기준으로 나눠 5가지 맛을 냈다. 휴대하기 간편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한 명란젓갈의 세계화다. 어떤 것은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식감이 마치 날치알 같다. 가와하라 씨는 멘타이코 업계의 활성화를 위해 창업 초기 후쿠오카 내 다른 수산물 가게에도 멘타이코 제조법을 가르쳐 주고 생산업자들을 모아 협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생산규모를 키웠다. 덕분에 지역 특산화를 이뤄 전국에 유통망을 구축할 수가 있었다는 것. 가와하라 씨의 이 같은 노력은 향토특산물이 '우리의 것'이라는 공동체적 기업가 정신으로 비롯됐다. 후쿠오카에는 후쿠야 이외에도 카바타, 나루미야, 야마야마 시나라이 등 15개의 멘타이코 업체가 나름대로 특성을 자랑하며 기업적 토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협업은 일본 전역으로 멘타이코 시장으로 확대하고 후쿠오카에서 생산과 유통망을 분점해 성공적인 향토식품 산업으로 일궈 냈다.

멘타이코는 우리나라 명란젓보다 맵지 않고 짠맛이 훨씬 덜하다. 그리고 멘타이코를 응용한 일식은 다양하다. 밥반찬은 기본이고 술안주와 삼각 김밥, 스파게티에도 응용한다. 파스타 레스토랑에도 멘타이코 메뉴가 있다. 우리나라가 원조지만 일본이 가져가 특산화하고 명품화를 거쳐 전국화를 이뤄 후쿠오카 향토 음식이 된 멘타이코는 산업화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명란젓을 규격화하고, 상품화해 전국의 시장으로 유통할 수 있는 기회를 일본에 넘겨 주고만 꼴이 됐다. 멘타이코처럼 우리 전통음식이 일본화되어 일본 지역 특산물이 된 사례는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우리 향토 음식에서 한식 세계화 소재를 발굴해 내는 데 진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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