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인이 가장 즐겨 보는 프로그램으로 1위에 '무한도전'이, 2위에 '오로라 공주'가 뽑혔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일부 신문들에서는 이 결과를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를 했는데, 이에 대해 많은 누리꾼들이 의문을 제기했었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무한도전'을 꼽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막장 드라마'의 대표로 꼽히는 '오로라 공주'는 욕하면서 보기는 할지언정 좋아해서 볼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라는 말은 이제 거의 표준어에 가깝게 정착된 신조어이다. 이 말은 광산에서 갱도의 막다른 곳을 뜻하는 '막장'이라는 말에서 유추된 것이다.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곳인 동시에 광부들이 광물을 채굴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채벽(採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막장에서 연상하는 것은 '캄캄하고 절망적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갈 데까지 간'과 같은 의미들이었을 것이다.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는 드라마들은 대체로 황당무계한 설정이나 비정상적인 인물들의 삐뚤어진 욕망을 중심축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사건들이 전개된다. 그리고 비윤리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이 등장하여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초월하기 때문에 긴장감을 유발한다. 사람들이 그런 드라마들을 보면서 갈 데까지 갔다, 혹은 어디까지 가나 보자를 생각하며 막장을 연상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막장 드라마들은 전개될 내용 중 뻔한 부분도 있어서 익숙하게 보이는 점도 있다. 남녀가 사랑하는데 부모님이 극구 반대를 하면 두 사람은 남매일 가능성이 높다. 세련되고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여자는 팥쥐처럼 청순가련한 주인공을 끝없이 괴롭힐 것이다. 그런데 그 악녀가 살짝 아파서 병원에 가면 불치병일 것이다. 인물들은 비밀 대화를 언제나 남들이 잘 들을 수 있는 장소에서 해서 한 명씩 알아 나갈 것이다. 막장 드라마들은 보통의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종잡을 수 없는 전개가 이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한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냥 편하게 볼 수 있다. 잘 짜여진 드라마는 한 편을 놓치면 이어서 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막장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예전에 한 드라마를 보면서 한 주일을 못 봤지만 이어서 보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여자 주인공이 귀신을 보는데 남자를 만지면 귀신이 안 보인다든가 하는 설정은 황당무계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막장 드라마라고 한다면 아마 20대에서 40대까지 여자들은 크게 반발을 할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황당한 설정 자체는 막장 드라마의 요소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결국 막장 드라마는 이야기 자체가 윤리적으로 막장까지 갔다는 것이거나 시청률만을 위해 무리한 이야기 전개를 하는 드라마 관계자들의 윤리성도 갈 데까지 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