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치하 대구사범학교에서 교육받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영향을 준 현준혁(玄俊赫'1906~1945)은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였으며 광복 이후 비운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평안남도 개천(价川)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한 수재였던 그는 1920년대 당시 분위기처럼 학생시절 사회주의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대구사범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인 1932년 4월엔 학생들과 항일 동맹휴학을 주도했고 학생들의 독서모임을 이끌며 독립의식을 고취하다 적발돼 그해 오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위 '4대 비밀결사사건'의 주인공으로 공판을 위해 대구지방법원의 재판정에 섰다. 4대 비밀결사사건은 '대구사범 현준혁 교유(敎諭)의 적화(赤化)계획사건'대구고보(高普)의 사회과학연구회사건'반제반전(反帝反戰)삐라사건'대구상업학교의 프로과학조선 제1호지국사건'으로 당시 언론을 장식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6년간 복역했고 교직에서 파면됐고 출옥 뒤 공산주의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감옥을 들락거렸다.
사회주의로 학생들에게 독립의식을 일깨웠고 해방 후 여운형(呂運亨) 조만식(曺晩植)과 활동을 같이하는 등 비교적 유연한 입장으로 북한의 진보적 지식인들로부터 김일성보다 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1945년 9월 28일 조만식과 함께 소련군정장관 로마넨코가 머물던 사령부 방문 뒤 돌아가다 평양시청 앞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삶을 마쳤다.
정인열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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