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수능 이후, 부모님들께

모임에서 올해 수능을 치른 자녀를 둔 지인의 하소연을 들었다. 전교 10등 정도이던 딸이 수능 스트레스와 정신적 부담감으로 예상보다 훨씬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고 한다. 딸은 몸져누워 있는 지경이고 아버지는 힘든 자녀의 마음을 위로하기는커녕 이미 지나간 일들을 들춰내며 식구들을 힘들게 하고 있어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란다. 아마 재수를 하는 쪽으로 갈 것 같다며 1년을 또다시 전쟁을 치를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고 했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는 한 대한민국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모습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수능 성적표를 받아들면 오만가지 생각과 조언들이 오간다. 대학보다는 학과를 보고 선택하라는 소신 있는 이야기도 맞는 것 같고 그래도 명문대를 나와야 대접받고 취업이 잘된다는 말도 그럴듯하다. 부모와 자녀 모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힘들어하는 가정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자녀와 부모 간에 생각이 다르면 또한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모의 의지와 뜻이 강하게 개입이 되면 자녀들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마음이 여린 자녀라면 부모의 기대와 바람에 따라 자신의 뜻을 포기하기도 한다. 만약 대학에 가서 선택한 전공이나 대학에 회의가 생기면 본인이 스스로 선택해서 진로를 결정한 학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겨내려고 애를 쓰는 반면, 부모의 뜻을 따른 학생들은 원망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심한 경우에는 자녀와 부모가 평생을 두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졸업 후 취업이 뜻대로 안 될 때는 그 화살이 부모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부모나 타인의 의지가 개입되었을 때는 핑계와 원망이 앞서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오죽하면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진로를 선택할 때 필자의 경험과 주변을 보면서 느낀 좋은 방법은 자녀 스스로 선택과 결정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모의 생각과 뜻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강제될 경우에는 반발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다. 부모의 생각이 당연히 맞더라도 자녀 스스로 받아들이고 선택하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수능시험을 앞두고는 상갓집 가는 것도 꺼리는 것이 대한민국 부모들이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길을 잘 찾도록 인도해 주고 이끌어 주는 것까지다. 자녀의 인생에서 대학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자세가 더더욱 필요하다고 하겠다. 자녀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이 아니라면.

조미옥 리서치코리아 대표 mee5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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