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린 코리아 몽골서 꽃피다]③'우정의 샘물'을 판 대구은행

숲 조성 불평하던 현지 주민들 우물 파주자 조림 협조도 '콸콸'

산림녹화가 성공하려면 주민들의 강렬한 열망이 있든지 아니면 정부의 확고한 리더십이 있어야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정부 관료들과 국민들이 하나가 됐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우리는 전 세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경제개발과 산림녹화를 동시에 이뤄낸 나라로 평가받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나무를 심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철저한 입산금지 정책을 실시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이라면 입산금지 완장을 찬 사람들이 동네 주민들마저도 산에 오르는 것을 통제하던 사례를 기억할 것이다. 국민들의 불편은 있었지만 우리는 이로 인해 단시일 내에 울창한 산림을 갖게 됐다. 이를 두고 경북대 김판기 교수는 "우리나라 식목이 성공한 것은 국가가 처벌 시스템을 운용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입산금지를 실시, 조그만 벌목과 심지어 낙엽을 긁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몽골은 달랐다. 유목민들이 주류를 이룬 나라인 까닭에 국민들은 물론 국가마저도 왜 나무를 심고 숲을 가꿔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다. 초지에 나무를 심어도 방목한 동물들이 뜯어 먹어 버리는가 하면 주민들 역시 숲보다는 풀이 더 필요한 탓에 심은 나무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건조한 지역인데다가 나무가 없었던 까닭에 비가 오면 빗물에 기름진 성분이 쓸려가 버려 나무가 살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물 부족이 심각해 나무가 말라죽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틈엔가 전 국토의 72%에서 사막화가 진행될 정도로 국토가 황폐해져 갔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와 일부 주민들이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나섰지만 때는 상당히 늦어 있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는 일. 자체적으로 식목에 나서는 한편 대대적으로 외국의 도움을 호소하고 나섰다.

대구은행이 뭉근머리트에 주목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동북아산림포럼의 주선으로 뭉근머리트 일대를 둘러본 대구은행 사전 시찰단은 과연 이 지역에서 나무가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민둥산,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방목 현장. 방목이 성행하는 것은 동물들이 어린나무를 뜯어먹기 때문에 생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다 나무를 키우기도 어렵지만 그보다 먼저 나무를 심는 것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물이 부족했기 때문. 유목민들은 나무를 심고 키우기 위해 가축이나 사람이 마실 물을 사용한다는 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대구은행은 일단 주민들의 호감을 사는 일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외지인들이 들어갔을 때 현지인들과의 교감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몽골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민들은 외국인이 들어와서 초지 대신에 숲을 만들려는 계획을 이해하려고도, 협조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우물 파기. 사시사철 샘이 솟는 우물을 만들어 현지인들이 방목하는 동물들에게 먹이는 한편 초지가 잘 조성될 수 있도록 한다면 나무를 심는 것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대구은행이 조성한 우물 이름은 '우정의 샘물'. 깊이 30m 이상을 파내러 가서 관정을 뚫어 샘을 만들었다. 황량하던 초원에 샘이 솟아나자 주민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방목하던 동물들도 물이 있는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이곳에서 흘러내린 물이 인근에 고여 조그마한 저수지가 형성돼 초원이 더욱 풍성해졌다.

이 샘은 연중 마르지 않아 저수지가 말라서 물을 마시지 못한 양떼나 염소떼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이 우물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마시는 것은 상당한 장관이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이 우물은 최근 무너져 내렸다. 벽돌을 쌓아 우리나라 같은 우물 정자식으로 만들었는데 지반이 약한 것을 고려하지 못한 탓으로 벽돌이 허물어진 것. 펌프를 설치하기도 했으나 펌프 관리가 제대로 안 된 탓도 있었다. 이는 부실 공사를 했다기보다는 현지의 여건상 유지 보수 및 관리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

하지만 깊이 판 샘은 그대로 솟아나 초원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은행이 샘을 파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동북아 산림포럼은 초원 한가운데 제대로 찾기 어려운 이곳에다가 태극기와 몽골 국기, 대구은행기를 다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교통 여건상 대형 간판을 세우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물 조성 사업이 성공하자 대구은행은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몽골 사막화 방지를 위한 대구은행 숲 조성지'라는 묘목장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인근 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이 나무들은 아직은 어리지만 뭉근머리트의 희망이 되고 있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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