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대장암 앓는 김시환 씨

"나도 아프지만 폐결핵 작은 아들 생각만 하면…"

하루하루 약에 의지해 사는 김시환(76) 씨는 자신의 약을 대신 받아오는 아내의 지친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함이 앞선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하루하루 약에 의지해 사는 김시환(76) 씨는 자신의 약을 대신 받아오는 아내의 지친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함이 앞선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2일 오후 김시환(76'대구 동구 율하동) 씨는 불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홀로 부인 류춘래(72)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류 씨는 이날 대장암 수술을 받아 움직이기 어려운 김 씨를 대신해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 약을 받으러 갔다. 오후 3시 30분까지 오겠다던 류 씨는 그 시각을 훨씬 지나서 약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류 씨는 "아이고,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라며 혀를 내두르며 스티로폼 장판을 깔아놓은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날씨가 추워도 보일러를 못 틀어요. 잠깐잠깐 사용해도 가스요금이 7만, 8만원이나 되더라고요. 그냥 앉으면 바닥이 너무 냉골이라서 없는 돈에 스티로폼 장판 조금 사서 깔아놨더니 겨우 앉을 만하네요."

◆IMF에 무너진 가정

김 씨는 한 대기업 시멘트회사에서 운송기사로 20년간 일한 뒤 IMF 구제금융 사태 직전인 1997년 여름에 퇴직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정년퇴직했다. 회사에서 퇴직을 앞둔 김 씨를 용역회사 계약직으로 신분을 바꿔 버린 탓이었다.

"들어보니 신분을 계약직으로 바꾸면서 퇴직금 대신 제가 몰던 차량을 제 소유로 바꾸고 일부는 월급에 포함해서 줬기 때문에 줄 돈이 없다고 하더군요. 퇴직금으로 노후 대비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지요."

김 씨가 빈털터리로 퇴직하던 순간 갑자기 IMF가 찾아왔다. 정년퇴직한 김 씨는 또 다른 일을 구하기는커녕 퇴직 후 방황하기 시작했다. 집은 물론이고 회사에서 받은 차도 팔아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아들이 하던 사업도 부도가 나면서 말 그대로 길거리에 나앉고 말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폐결핵으로 몸이 안 좋았던 작은아들은 일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 가정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때부터 김 씨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입에 잘 대지 않던 술을 마시는 횟수가 점점 늘기 시작했다. 결국 퇴직 2년 뒤 김 씨에게 뇌졸중이 찾아왔다.

뇌졸중을 겨우 극복한 김 씨는 2000년부터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돼 국가로부터 나오는 지원금으로 겨우겨우 살아야 했다. 부인 류 씨가 지하철에서 청소부 일을 한 적도 있었지만 관절에 문제가 생겨 그만둬야 했다. 이때 김 씨의 몸에 대장암이 발견됐다.

"지난해 갑자기 황달기가 있어 병원에 갔었어요. 병원에서는 단순히 간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면서 내시경 검사를 해 보자고 하더군요. 대장 내시경에서 보통 사람 손바닥만 한 크기의 암 덩어리가 발견됐대요. 종양 크기는 컸지만 다른 곳에 전이된 부분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두 아들 때문에 속 끓는 마음

김 씨 부부는 두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답답하다. 큰아들은 사업에 실패한 뒤 어디서 무얼 하고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작은아들은 마흔이 넘은 지금도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만큼 몸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사업 실패 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돈을 벌고 있다. 아주 가끔 큰아들이 집으로 연락하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서로 살아 있다는 안부만 확인할 뿐이다. 며느리와 손자는 사돈댁에서 지내고 있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손자는 가끔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하지만 따로 만나지는 않고 있다.

더 큰 걱정은 작은아들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폐결핵이 찾아오면서 작은아들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 김 씨 부부의 삶은 작은아들을 뒷바라지하고 간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작은아들은 폐결핵 때문에 학교도 중퇴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작은아들은 결핵과 간질환에 시달리면서 폐인이 돼 갔다. 배우지도, 일하지도 못하던 작은아들은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결국 알코올중독의 늪에 빠져들어 버렸다.

"두 아들이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걸 보면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자식들이 고통받나' 싶어요. 차라리 내가 일찍 죽어 없어지면 자식들 앞날이 펴지려나 싶기도 하고…. 아들 생각만 하면 그저 눈물이 납니다."

◆부부는 점점 지쳐간다

부인 류 씨도 노환으로 점점 몸이 약해지고 있다. 한때 했던 청소일 때문에 몸의 관절이 많이 상했다. 류 씨도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싶지만 남편과 작은아들 뒷바라지에 제대로 된 치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일을 해서 조금이나마 돈을 벌고 싶었지만 일흔 넘은 고령인 탓에 일자리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김 씨의 대장암 수술비는 보건소와 구청의 도움을 받아 긴급의료지원비 등으로 해결했다. 하지만 매달 10만원씩 들어가는 약값은 매달 60만원 안팎의 지원금으로 생계를 꾸리는 부부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 중 지금 사는 임대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 각종 공과금 등 20만원의 고정지출에다 약값이 추가되면 실제 김 씨 부부가 쓸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많이 지출되는 것은 작은아들의 부양 비용이다. 늘 몸이 아픈 작은아들은 두 부부를 부양할 능력이 없다. 구청에 몸이 아프다는 걸 증명하는 각종 서류를 떼어 보내도 허사였다. 같이 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작은아들이 두 부부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부부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지정을 받지 못한다. 결국 김 씨 부부는 작은아들에게 따로 방을 얻어 주고 나서 자신들이 받고 있는 수급비를 쪼개 작은아들의 방값과 병원비를 포함해 20만원 이상의 돈을 대 주고 있다. 결국 김 씨 부부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10만원 안팎. 이 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두 부부는 점점 지쳐가고 있다.

"정말이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신기할 따름이에요. 하루하루 넘어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요즘은 달력의 20일만 바라보고 살아요.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지원금이 들어오는 날이거든요. 그날만 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서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매일신문'대한적십자사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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