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떡은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뜻에서 '첨세병'(添歲餠)으로도 불린다. 떡국에 들어가는 가래떡은 새해를 맞는 설 명절에만 맛보던 음복 음식이었지만 요즘에는 시절에 상관없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백병(白餠)이라는 또 다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조상들은 흰 가래떡에서 청결과 엄숙함이라는 상징성을 찾았다. 또 길게 늘여 가래로 뽑고 엽전 모양처럼 동그랗게 썬 것은 무병장수와 풍족한 재물을 기원하는 민속학적 의미도 담고 있다.
오래전 떡방앗간에서 가래떡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여겨본 적이 있다. 가래떡을 만들려면 먼저 쌀을 잘 씻은 후 물에 충분히 담가 두어야 한다. 이렇게 잘 불린 쌀을 곱게 가루 내고 시루에 쪄서 가래떡 뽑는 기계에 얹으면 매끈하게 두 가닥으로 뽑혀 나온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가위로 적당한 길이로 잘라내 떡이 서로 붙지 않도록 찬물에 담그는 마무리 과정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바짝 마르지 않도록 식혀 굳힌 뒤 둥글게 썰어내면 된다.
뜬금없는 가래떡 타령은 세상사 모든 일이 생쌀이 가래떡으로 변신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아서다. 음식은 정성이라는 말이 있듯 정치와 사회, 경제 어떤 일에서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또 공력 없이는 제 꼴을 이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를 가래떡에 대입해 보면 답이 나온다.
혼란 그 자체였다. 흩어진 생쌀처럼 새 정부 출범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정치는 분별력을 잃었다. 해묵은 정쟁이 1년 내내 국정을 파탄 내고 민심을 어지럽혔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인사와 정책,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휘청댔다. 야당은 대선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로지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을 물고 늘어졌다. 일각에서 현 국내외 정세를 100여 년 전 조선조 말의 상황과 비교하며 '망국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제1 공적이 바로 정치와 정치 지도자들이어서다. 국민은 이런 꼴사나운 정치에서 눈을 거두며 국회해산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새 정부 출범 1년 내내 국민들은 입안이 깔끄러웠다. 진영 논리가 판을 치면서 국정 파트너십은 아예 실종되고 시민사회조차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51대 49'의 양단 정치가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리더십 부재는 치명적이다. 가루 내고 쪄내야 할 판에 하는 일마다 헛발질에 저항만 불렀다. 기초연금 문제와 고위 공직자 인사, 채동욱'이석기 사태 등으로 국정은 누더기가 됐다. 급변하는 내외 정세에 정작 토끼 눈이 되다시피 한 것은 바로 국민이다.
국가 지도자를 세우는 것은 '표'(票)라는 민의다. 정치 행위는 표에 대한 당연한 응답 절차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까딱 고개 숙이고는 그냥 만다. 국정에 혼선이 빚어지면 언제든 국민에게 고개 숙이고 잘 풀어가겠다는 다짐도 의지도 없다. 지금의 국정 난맥상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제 잘못이든 아니든 정국이 어지러우면 깨끗이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 될 일이다. 원칙과 소신도 지나치면 완고하다는 인상을 주고 정치 철학마저 궁해 보이는 법이다.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판을 아우르는 정치에 대한 국민 갈망이 지금은 거의 실망 단계다. 실망이 깊어지면 체념이 아니라 분노가 되는 게 세상 이치다.
고대 중국의 시인 굴원의 '초사'에 건상유족(褰裳濡足)이라는 말이 나온다. 치마를 걷어 발을 적신다는 뜻인데 모든 일에는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다. '국민행복시대'가 대통령 혼자만의 슬로건이 아니라 우리 정치의 가치이자 지향점이 되려면 옷을 걷거나 민심에 다가서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옛말에 '때로는 보태는 것이 해가 되고 덜어내는 것이 보탬이 된다'고 했다.
생쌀로는 결단코 가래떡을 만들 수 없다. 떡이 될 때까지 공을 들여야 한다. 양보와 합의, 타협 없이 떼나 쓰는 정치, 생쌀처럼 따로 노는 증오의 정치 행태로는 나라 꼴 잘되기가 어렵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60년이 훨씬 넘었다. 국민들은 해마다 떡국을 먹고 나이를 먹었지만 정치는 생떡국을 먹었는지 여전히 그대로다. 곧 새해다. 묵은 정치적'사회적 과제는 연내 모두 풀고 새해에는 윤기 나는 가래떡에 고명 잔뜩 얹은 제대로 된 떡국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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