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마크 펜더그라스트 지음/정미나 옮김/을유문화사 펴냄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세상을 바꾼 거대한 세력이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는 커피가 정치이고, 경제이고 문화이고 인권이고, 환경이라고 주장한다.
커피가 걸어온 역사는 길고도 다채롭다.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귀한 농산품으로 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점유율이 높은 향정신성 마약의 최대 원천으로 거대 사업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원산지에서 전파된 커피는 전 지구를 돌며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의 모든 평원과 산악을 점령해왔다. 커피 열매의 씨를 볶아서 가루로 갈아 뜨겁게 달인 액체는 각성효과와 사회적 결속 효과로 애호를 받고 있다. 시대에 따라 최음제, 관장제, 신경 강장제, 수명 연장제로 처방되기도 했다. 전쟁을 통해 끝없이 전파되었으며, 전쟁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도 했다. 믹스커피가 좋은 예다.
커피는 전 세계 약 1억2천500만 명의 밥줄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당히 노동집약적인 작물이어서 손바닥에 못이 박이도록 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고, 가지를 치고, 물을 주고, 수확하느라 노동자들은 골병이 든다. 그렇게 일하지만 커피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수입은 약 3달러에 불과하다. 산기슭 등에서 커피를 기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수도나 전기시설, 의료 혜택이 없거나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일한다. 비록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커피 농민과 노동자들은 여전히 착취에 시달린다.
커피의 달콤하고 쓴맛은 시적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커피의 역사는 논란과 정략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라비아 국가들과 유럽에서 커피는 혁명적 선동의 원흉으로 여겨져 금지되기도 했고, 인류의 건강 파괴 주범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커피는 여러 가지 얼굴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과테말라에서는 인디언 원주민들이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의 핵심인가 하면, 코스타리카에서는 민주주의 전통이 싹트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미국 서부인들이 온순해지는 계기도 되었다.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이 국민들을 살상할 당시 그의 전적인 자금줄이 되어 주었는가 하면,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니스타(1979년 소모사 정권을 무너뜨린 니카라과 민족해방전선의 일원)들이 소모사의 커피농장을 탈취함으로써 혁명의 깃발을 올리게 한 힘이 되기도 했다.
커피는 초창기 엘리트들의 약용 음료로 출발해, 차츰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활력 충전 음료로, 증산층 가정에서 수다 촉진 음료로, 구애 중인 커플들에게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음료로, 때로는 길 잃은 영혼에게 단 하나의 쓸쓸한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때로는 세련된 취향을 가진 남자와 여자임을 은유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커피하우스는 사람들이 혁명을 구상하고, 시를 쓰고 사업을 하고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요긴한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1920년대에 금주법과 대중의 사교 열풍에 힘입어 미국의 대도시마다 커피하우스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1923년 뉴욕 타임스가 '커피에 취한 뉴욕'이라는 부제를 실었을 정도다.
2013년 현재 대구 역시 1920년대 뉴욕과 다르지 않다. 커피전문점 수는 600개가 넘고, 인구 수 대비 커피전문점 수도 전국 도시 중 가장 많다. 앞산 카페골목, 동성로 카페골목, 약령시 카페골목 등 곳곳에서 커피점이 성업 중이다. (매일신문 11월 23일 자 1면)
커피산업은 많은 국가의 경제, 정치, 사회구조의 형성을 좌지우지했다. 생산지 원주민들에 대한 탄압과 토지강탈을 야기하기도 했고, 수출작물에 치중하느라 자급농업을 포기함으로써 외국시장에 과잉 의존하는 경제권을 낳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생활고에 버둥거리는 가족농들에게 중요한 환금자금이 되어주었고, 국가 산업화와 현대와의 근간이 되어 주기도 했다. 유기농 상품, 공정무역, 철새들의 귀중한 서식지에 대한 모델이 되기도 했다.
커피의 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커피는 열대 지방의 산기슭을 침범해 자연을 변모시켜 놓았고, 커피하우스는 혁명뿐만 아니라 새로운 예술적 혹은 사업적 모험을 낳는 사회적 장이 되어 주었다. 술에 절어 살던 유럽 노동자들에게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었고, 국제무역과 선물거래의 파생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여전히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커피는 헤어날 수 없는 팜므파탈인 모양이다.
642쪽, 2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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