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마지막 소원

"아니야! 나, 민수 씨 절대 떠나지 않아. 다른 건 다 몰라도 절대로 민수 씨를 떠나진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전혀 뜻밖의 반응에 놀라서 잠시 말을 잊었다. 민수 씨는 어릴 때부터 당뇨병을 앓다가 합병증으로 투석을 하는 환자다. 오랫동안 병을 앓아온 환자들이 그렇듯 민수 씨도 스스로 하는 일은 거의 없고 자신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치료와 관련된 일들도 모두 부인 은희 씨에게 맡긴다. 오랜 병간호로 지칠 만도 한데 은희 씨는 워낙 심성이 착한데다가 남편 사랑하는 마음까지 더해져 어느 보호자보다 정성껏 민수 씨를 돌본다. 그 긴 세월을 한결같이 참으로 아름다운 부부다.

그런데 오랜 투병 생활이 민수 씨 몸뿐 아니라 마음도 병들게 만든 모양이다. 부인에게 화를 낼 뿐 아니라 거친 행동도 한다. 그러고는 곧 후회하고 용서를 빌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런 일이 잦아지다 보니 은희 씨도 많이 힘들다. 그래서 내가 은희 씨를 도와주려는 의도로 "민수 씨, 자꾸 그러면 은희 씨 도망갈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는데 은희 씨의 반응이 의외다.

오히려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민수 씨 곁을 떠나지는 않겠다"고 울며 민수 씨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주제넘게 괜한 이야기를 했구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감동으로 잠시 가슴이 먹먹하다. '아! 이런 것이 사랑이구나. 아무리 힘들어도,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떠나지 않는 것이….'

그동안 오랜 병간호에 지쳐 환자 곁을 떠난 많은 가족들을 보아온 터라 이 부부의 애틋함은 더욱 각별하다. 여태껏 이만한 부부는 본 적이 없다. 그러던 중 이 부부에게 마른하늘 날벼락이 떨어졌다. 늘 부인이랑 함께 오던 민수 씨가 웬일인지 혼자 병원에 왔다. 부인이 암 수술 후 항암치료 중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챙겨주던 부인이 없으니 민수 씨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생활하고 병원도 다닌다. 게다가 부인 병간호까지. 그러다가 민수 씨도 그만 발을 헛디뎌 다리가 부러졌다.

그래서 오늘은 은희 씨가 민수 씨 대신 병원에 왔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은희 씨는 눈물을 훔친다. "선생님, 나 죽으면 우리 민수 씨 누가 돌봐줘요. 저 사람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에요. 이번에도 제가 아픈 바람에 혼자서 끼니 챙겨 먹다가 넘어져서 다리까지 부러졌는데 제가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해요? 저는 다른 소원은 없어요. 제 마지막 소원은 우리 민수 씨 먼저 보내고 제가 죽는 거예요."

가슴이 아프다. 눈물이 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고 하던데 지금 이 부부에게 닥친 시련은 너무나 가혹하다. 오늘 이 시간 나의 소원은 은희 씨가 씩씩하게 병을 잘 이겨내고 다시 예전처럼 민수 씨 손을 잡고 진료실 문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는 것이다.

김성호<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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