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인문학은 인간 보편적 가치의 회복

나는 인간학은 인문학이며 동시에 인문학은 인간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교양을 함양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인문학을 통해 배운 것들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고,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인문학으로 유연해진 사고방식의 덕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며, 인간에 대한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다. 이를 깨우쳐 인격의 도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김경집의 '인문학은 밥이다' 중에서)

"좋겠다. 내신 성적만 잘 따서 여기 들어오고." "나도 시골에서 학교 다녔으면 쉽게 서울대 왔을 텐데." "누구는 특목고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누군 지방에서 놀다 들어오고." 지역균형선발이나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들어온 학생들을 향해 특목고 출신 학생들이 하는 말이란다. 그들은 심지어 지역균형선발로 입학한 학생들을 '지균충', 기회균형선발로 입학한 학생들은 '기균충'이라 비하하여 부르기도 한다. 국내 최고 지성의 전당이라는 서울대학교에서 벌어진 부끄러운 풍경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졸업 성적은 어떨까. 서울대가 2005년 입학한 학생들을 8학기 동안 추적한 결과 지역균형선발 입학생 581명의 8학기 평균 학점은 4.3점 만점에 3.37점이었다. 반면 정시모집 입학생은 3.21점, 특기자 전형 입학생은 3.36점을 받았다. 지역균형선발 입학생들은 첫 학기 학점이 다른 전형 입학생보다 낮았지만 4년 후에는 큰 폭(0.41점)으로 오르며 다른 학생들을 압도했단다. 과연 특목고 학생들이 힘들게 공부한 것은 도대체 어떤 공부였을까?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잠을 잘 겨를도 거의 없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산과 들의 풍경도 보지 못한다. 공부하느라 책을 읽을 시간도 없다. 당연히 사색이나 성찰을 할 시간도 없다. 100점을 맞아도 100점을 맞은 아이가 많으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현재 대한민국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이해하기보다는 현재 자신의 점수가 중요하고, 점수보다도 현재 등위가 중요하다. 등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점수화될 수 있는 평가를 활용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이해해버리게 되고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안목을 지니기가 어렵게 된다. 점수화될 수 있는 교육에서 제시하는 일방적인 지식이 자신의 본래 지식이라고 믿어버린다. 기존 지식에 대한 절대적인 경도는 결국 그 지식의 노예가 되는 결과를 낳는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지식을 만든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 대상에 대한 권위가 바로 자신의 권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권위에 대한 맹종은 창조를 이끌 수 없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최근 인문학 광풍이 불고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볼 때 씁쓸하기까지 하다. 자연과학이 차지한 가치에 묻어가는 듯한 느낌은 스티브 잡스의 신격화에서도 드러난다. 인문학은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나를 들여다보고, 들여다본 내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 가치의 회복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특목고에서 성적을 위해 공부한 내용은 단지 지식의 일부일 뿐이다. 나아가 지식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모든 영역에서 우월한 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한데 바로 그 인간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모든 것을 얻는다고 해도 인간을 잃을 때 이미 나도 인간이 아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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