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독식을 위한 이상한 나눠 먹기

새해 소망을 품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다. 직장과 각종 모임의 송년회와 더불어 거리 곳곳의 불우이웃돕기 행사는 연말의 진풍경 중 하나다. 김장철 이웃 간에 김치 한 포기 나누는 모습, 구세군 냄비에 꼬깃꼬깃 용돈을 집어넣는 아이들의 고사리손, 없는 살림에 어려운 이들을 위해 흔쾌히 모금봉투를 내놓는 '나눔'의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시린 겨울을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은 이런 '나눔'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눈다는 것, 일단 해보면 생각보다 꽤 괜찮은 일이다. 시작은 자신의 가진 것을 내놓는 것부터지만 조금씩 얻어가고 배워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눔'은 각박하고 개별화된 세상에서 지향하고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이자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나눔'이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반대로 '독식'을 뜻하는 경우도 있다. 부자와 재벌이 친인척은 물론이고 갓난아이에 불과한 손주에게까지 자산과 주식을 나누는 것은 세금을 덜 내고 자산을 더 불리기 위한 꼼수다. 결국은 더 가지기 위한 나누기에 지나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체급과 종목을 더 세부적으로 나누는 것도 사실은 자국의 메달 획득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어찌 보면 페어플레이를 표방하는 스포츠의 세계가 실제로는 강대국 중심의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가장 불공정한 게임일지 모른다. 그리고 '게리맨더링'으로 대표되는 의회를 독식하기 위한 '선거구 나누기'가 있다. 이런 '나눔'을 빙자한 '독식'은 온갖 명분과 이유를 갖다 댄다 하더라도 결국은 제 잇속 챙기기에 불과하다.

지난달 29일 대구시 자치구'군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는 기초의원 선거구를 확정하면서 4인 선거구 11개를 2인 선거구 22개로 분할하는 안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통과시켰다. 당초에는 4인 선거구 11개, 3인 선거구 16개, 2인 선거구 5개 등 32개 선거구를 만들기로 했지만, 4인 선거구를 모조리 2인 선거구로 쪼개버리며 기존 합의를 뒤집어 버렸다. 합의내용을 뒤집은 부담이 컸는지 '무기명' 투표를 했지만 압도적인 결과가 나온 탓에 '사실상 유기명' 투표로 끝이 났다. 게다가 대구시 공무원들이 선거구 획정 직전에 선거구 획정위원들을 개별로 만나 협조 요청을 한 것이 밝혀지면서 대구시의 외압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구 나누기'는 특정정당의 공천을 받으면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대구지역의 정치 환경을 고려할 때 이 또한 나눔을 빙자한 독식이 틀림없다. 선거구 획정 이전에 의견을 수렴했다는 8개 구'군이 모두 새누리당의 독점 구도에 있는 상황임이 이를 철저히 방증하고 있다. 특정당과 정치세력이 대구지역 의회권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선거구 도입은, 특히 4인 선거구의 유지는 지역 정치 발전을 위한 그야말로 최소한의 조건이다.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면서 다양한 정치세력의 지방의회 진출을 이룰 수 있는, 그리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정치의 기본 원리를 지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선거구를 쪼개는 대구시의 선거구 획정은 '중대선거구' 도입의 취지를 무색게 하는 기껏 '소중선거구'를 선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선거구 확정안은 대구시장의 승인을 거쳐 내년 1월 대구시의회의 결정에 따라 확정된다. 그간 선거구를 날치기 처리했던 행보를 지켜볼 때 큰 기대는 되지 않는다.

옛말에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으라'는 말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말했던 '나눔'이라는 미풍양속이 나눠서 자기 식구만 챙기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나누는 것의 시작은 가진 것을 내어놓고 소수와 약자를 배려하는 것에서부터이다.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이 또 욕심을 부리는 것을 우리는 탐욕이라 하고, 탐욕은 화를 부른다. 많이 먹으면 탈이 나고, 물은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특정세력의 지방의회 독점과 부패가 계속될수록 그 피해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다. 결국 독식을 위한 이상한 나눠 먹기를 바로잡을 방법은 시민들의 현명한 선택밖에 없다.

박석준/함께하는 대구청년회 대표 adultbaby98@gma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