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궁극의 사치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뷔페에 가서 한 접시 가득 담아 먹는 일, 접시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자리를 들락날락 거리는 일, 둘 중에서 뭐가 더 부끄러운가? 뷔페에 가면 딱 한 접시만, 그것도 가벼운 샐러드류만 담아서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실제로 그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주변에 한 명 있기는 하다. 내가 일하는 곳의 박동준 대표는 가끔 그런다. 나도 그런 호사스러운 행위를 따라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영남대 미대 김희수 교수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분은 복잡한 주말 영화관에 혼자 가서 표를 세 장 끊어서 양 옆자리를 비워둔 채 가운데 좌석에 앉는다고 한다. 그리고 팝콘을 먹으며 편안히 영화를 본다는 그 말이 농담 같기는 한데, 평소 행동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만원 넘는 돈을 더 써가며 엉뚱한 사치를 누릴 사람은 실제로 없을 것이다. 하물며 떠먹는 요구르트 하나를 먹더라도 떼어 낸 뚜껑을 혀로 핥지 않고 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약 내가 엄청난 부자가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다른 호의호식보다 하고 싶은 게 이런 일이다. 뷔페에 가서 샐러드 한 접시만 먹고 나오기, 떠먹는 요구르트 뚜껑은 그냥 버리기, 어느 정도 쓴 치약도 애써 짜내지 말고 버리기 같은 일. 스스로에게 몰입해서 벌이는 낭비든, 남들에게 과시하려고 행하는 사치든 간에 그것은 비합리적인 경제 행위가 맞다.

문화경제학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기는 하나, 이는 주류 경제학이 아닌 예술행정/경영학자들이 생각해 낸 학문이다. 문화를 경제학의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일이 기술공학적인 방편은 될지언정 과학적 주제로 다뤄져 오지 못한 까닭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논의되는 문화가 숫자로 계량화되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미술 작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방정식에서 작가의 경력과 생물학적 나이에 준거하는 기회비용, 작품 완성에 필요한 시간과 원재료 가격은 상수에 포함시키지만, 작품에 담긴 매혹적인 힘은 관객의 취향과 같은 변수로 취급하면서 상수에서 빼버린다. 따라서 그들은 이름난 미술 작품이 왜 그렇게 비싼지 이해하지 못한다.

증명이 어려운 문화의 경제 원리 아래에서 미술 시장은 형성된다. 컬렉터는 투기 목적이 아닌 이상 그림을 살 이유가 몇 가지 없다. 이유는 자기 취향으로의 몰입, 자기 부에 대한 과시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사는 일이 궁극의 사치라고 본다. 자동차나 집과 같은 사용가치도 없고, 귀금속과 같은 교환가치를 매기기도 리스크가 큰 예술 작품을 소비하는 일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 그건 한편으로는 자아도취이며, 어쩌면 예술에 대한 헌신일 수도 있다.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디렉터 klaatu84@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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