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의 부채와 방만 경영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칼을 빼 들었다. 공공기관 기관장의 책임을 강화해 부진 기관은 임기와 관계없이 해임하는 한편 해소 노력이 부실한 기관장도 즉각 퇴진시킨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또 사업비를 대폭 줄이고, 신규'계속사업도 축소하는 등 군살 빼기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역으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앞두고 있는 공기업을 옥죄는 것은 지역 경제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공기업 찬바람 예고
정부는 기획재정부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11일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했다. 최근 방만한 공기업 실태에 대해 국민들의 불신이 커진 만큼 부실 공기업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특히 부실한 가운데 복리후생에만 열을 올리는 공기업에 철퇴를 가할 것을 예고했다.
공기업 정상화의 주된 내용은 경영 정보공개와 부채관리, 그리고 방만 경영 개선이다. 정부는 우선 공공기관의 부채, 복지후생 등 모든 정보를 상세히 공개해 공공기관 스스로 개선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부채 관리와 관련해 정부는 오는 2017년까지 부채 비율을 200%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집중 점검에 나선다. 구분회계를 도입하고 부채관리 노력 평가를 강화하는 한편 공공기관 사업 관리 개선 등 제도 강화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과거 5년간 부채증가를 주도한 가스공사, 장학재단 등 12개 기관을 중점 관리한다.
이 같은 관리를 통해 정부는 공기업의 방만 경영 행태를 조기에 해소한다는 목표이다. 공공기관은 대폭 축소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관리 대상에 넣고 기타 공공기관은 주무부처가 관리하되 현재보다 훨씬 강화된 기준으로 점검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기업 내에 자체 모니터링을 실시하도록 했으며 재정부를 비롯한 주무부처와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 감시체계도 운영키로 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관련 민간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일반적 처방이 아닌 기능'사업 측면에서는 기능조정, 조직'인사 측면의 방만 경영 근절, 재무 측면의 부채감축 등 원인해결 방식의 다차원적 대책을 마련했다"며 "지금은 부채 증가가 누구 탓인지를 따질 때는 아니고 무조건 줄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방만한 경영 실태
정부는 이날 발표에 앞서 공공기관 8대 방만 유형사례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교육비'의료비'경조비 과다 지원, 특별휴가, 퇴직금 추가 지급, 느슨한 근무행태, 고용세습, 인사권 침해 등이 포함됐다.
의료비 문제와 관련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 조합원과 직계존비속, 배우자와 부모의 건강검진 지원이 적발됐다. 업무상 부상하거나 순직한 경우 50%~100% 추가 지급하는 신용보증기금의 퇴직금 문제가 지적되는가 하면 쟁의기간 중에도 임금 전액이 지급된 각종 연구재단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인천공항공사의 경우 대학생 학비 지원으로 매학기 150만원을 지출했고, 석유공사는 자사고'특목고 자녀에 학비 전액을 부담했다. 원자력의학원은 본인 및 배우자의 부모 회갑에 3일의 특별휴가를 내줬고, 칠순에도 이틀간의 특별휴가를 배려됐다.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해 주는 고전번역원도 대표적 방만 경영 실태로 꼽혔다.
◆지역경제에 영향 주나
방만한 공기업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지만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앞두고 있는 공기업을 옥죄는 것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정부가 공기업의 판공비를 대폭 축소할 경우 지역에 뿌려져야 할 돈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부 공기업 관계자는 "앞으로 눈치 보여 밥도 5천원짜리 이상을 먹지 못하는 분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며 "일만 하라는 게 정부의 방침인데 (혁신 도시 내) 주변 식당을 어슬렁거리기보다 구내식당에서 빨리 먹고 자리를 지켜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의 신규 사업은 물론 기존 사업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이 발표됨에 따라 전국 지자체 및 광역단체와 계획 중인 사업도 대폭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공공기관 이전이 전국 균형 발전이라는 점에서 시작한 만큼 혁신도시 건설이 완료되면 이전 공기업과 해당 지자체간 연계 사업도 탄력 받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번 발표에 따르면 반대 기류를 타는 모양새이다.
특히 공기업의 방만 경영은 수십 년간 이어져 왔으나 공기관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혁신도시가 완공 단계에 있는 지금에서야 정부가 칼을 빼는 것은 지방 혁신도시 활성화에 독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부의 이날 발표 내용은 내년부터 추진해 2015년 본 궤도에 오를 예정인데 전국의 혁신도시 완공 시기는 대부분 정부가 본격적으로 공기업에 칼질을 하는 2015년으로 예고돼 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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