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시조로 푼 한시] 讀書(독서)2/ 서경덕

부귀를 내가 어찌 손을 댈 것인가

조선의 사회가 철저한 신분제도 중심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달랐을지라도 많은 선비들은 돈이 없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재산이 없으면 그저 띠풀 집이라도 괜찮다는 낙관론에 사로잡혀 살았다. 끼니를 안칠 식량이 없어도 안빈낙도하며 삶을 즐겼다. 거유(巨儒)로 칭송받았던 서경덕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기 철학(氣 哲學)을 체계적으로 완성하면 그만일 뿐 부귀와 재산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나물 캐고 고기 낚아 그렁저렁 살아가며

달을 읊고 바람 쐬며 정신을 씻어 보네

내 학문 이치 깨달으니 어찌 인생 헛되겠나.

採山釣水堪充腹 詠月吟風足暢神

채산조수감충복 영월음풍족창신

學到不疑知快活 免敎虛作百年人

학도불의지쾌활 면교허작백년인

【한자와 어구】

採山: 산나물을 캐다/ 釣水: 물에서 고기를 낚다/ 堪充腹: 충분하게 배 채우며 견디다/ 詠月: 달을 읊다/ 吟風: 풍월을 읊다/ 足暢神: 정신을 넉넉히 하다/ 學到: 학문이 이르다/ 不疑知: 알아서 의심이 없다/ 快活: 삶이 즐겁다/ 免敎: 배움을 면하다/ 虛作: 헛되이 짓다/ 百年人: 사람의 평생

'부귀를 내가 어찌 손을 댈 것인가'로 제목을 붙여 지난주에 소개했던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1489~1546)이다. 그의 철학은 만물의 근원과 운동변화를 기로써 설명하고, 그 기를 능동적이고 불멸하는 실체로 본 데 특징이 있다.

격물을 중시했던 그의 학문 방법은 독창적인 기 철학의 체계를 세우는 바탕이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나물 캐고 고기를 낚아 그런대로 살면서/ 달을 읊고 바람을 읊으며 정신을 씻네/ 내 학문 이치를 깨달아 즐겁기만 하니/ 어찌 이 인생이 헛되겠는가'라는 시상이다.

전구에서 시인은 '글을 읽을 때 큰 뜻을 품으니/ 가난의 쓰라림도 달게 받아진다/ 부귀에 내가 어찌 손을 댈 것인가/ 산과 물에 포근히 안기고 싶다'라고 시심을 쏟아냈다. 부귀와는 결코 영합하지 않고 산과 물에 포근히 안기겠다는 결연한 자기 의지를 노정(露呈)했음을 밝혔다.

전구에서 이어지는 위 시에서 안빈낙도의 한 모습을 보게 된다. 나물 캐어 먹고 물고기를 손수 낚아 그럭저럭 살으련다는 다음 단계 삶의 구상을 한다. 채식만 하겠다는 의지에 이어서 동산에 떠오르는 달을 보며 시를 읊고, 계절마다 바뀌는 바람도 쏘이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이보다 절경의 지경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자는 이제 자연과 더불어 안빈낙도하는 생활을 하고 나니 정신이 맑고 상쾌했으니 이제는 학문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심회를 담는다. 또 인생을 가장 멋있게 지냈으니 헛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서경덕은 성리학뿐 아니라 도가 사상이나 역학(易學), 수학 등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학문을 하면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태도를 중시했고, 성현의 말이라고 해서 그대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회의하고 사색하여 깨닫는 자득지학(自得之學)을 강조했다.

그는 스스로 사물의 이치를 따지지 않고 독서에만 의존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라고 비판하며, 직접 자연과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려 했다. 이러한 태도는 성현을 본받고 따르는 의양(依樣)을 강조했던 이황 등 다른 성리학자들과는 많이 다르다.

서경덕의 사상은 이황을 비롯해 주리론(主理論) 계열의 성리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았지만, 이이 등 주기론(主氣論) 계열의 학자들에게는 큰 영향을 끼쳤다.

이이는 서경덕의 사상이 이(理)와 기(氣)는 서로 떠날 수 없다는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의 요체를 분명하게 터득했다며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서경덕의 일기장존설 등은 비판하며 이(理)를 궁극적 실체로 인정하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관점에서 주기(主氣) 철학을 발전시켰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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