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국내 첫 하우스 콘서트 도입 '공간울림' 이상경 대표

아파트서 시작한 '거실 연주회' 20년…입소무 타고 도심형 문화축제

이상경
이상경 '공간울림' 대표는 오르가니스트, 공연기획자를 넘어 문화운동가로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의 허브로 자리 잡은 '공간울림'은 올 상반기에 신규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다.
이상경 대표=이 대표가 음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여섯 살 때 어머니 손에 끌려 여동생과 함께 찾은 피아노 교습소에서였다. 교장선생님으로 퇴임한 부친과 약사였던 모친은 물론 소아청소년과 개업의사인 남편 김상관 씨 역시 클래식 애호가이다. 이 대표는 영남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뒤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학부를 마친 뒤에는 미국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기도 했지만 학비가 너무 비싸 유학을 포기했다. 결혼 이후 연세대 대학원(오르간 전공)과 네덜란드 유트레흐트 음악원에서 오르간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9년부터 대구경북, 부산경남 지역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다. 현재 파이프오르간을 갖춘 호텔 인터불고, 남산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대학 시절 대구 시내
이상경 대표=이 대표가 음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여섯 살 때 어머니 손에 끌려 여동생과 함께 찾은 피아노 교습소에서였다. 교장선생님으로 퇴임한 부친과 약사였던 모친은 물론 소아청소년과 개업의사인 남편 김상관 씨 역시 클래식 애호가이다. 이 대표는 영남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뒤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학부를 마친 뒤에는 미국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기도 했지만 학비가 너무 비싸 유학을 포기했다. 결혼 이후 연세대 대학원(오르간 전공)과 네덜란드 유트레흐트 음악원에서 오르간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9년부터 대구경북, 부산경남 지역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다. 현재 파이프오르간을 갖춘 호텔 인터불고, 남산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대학 시절 대구 시내 '녹향'과 '하이마트' 등 음악감상실에서 클래식을 들으면서 행복해했던 추억을 떠올리던 그는 "소질이 없어 유명 연주자가 될 꿈은 꾸지도 않았다"며 "대학교수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뒤돌아보면 이렇게 살 운명이었던 같다"고 했다.

1994년 대구 북구 관음동 한 아파트에 특별한 공사가 벌어졌다. 베란다를 확장하거나 실내를 예쁘게 꾸미는 인테리어 작업이 아니었다. 오로지 '낯선' 악기 하나를 들여놓기 위해 거실 천장을 20㎝ 이상 높이는 일이었다. 인간의 기술이 이루어낸 가장 완벽한 악기라고 일컬어지는 파이프 오르간(pipe organ)이었다. 가정용이라고는 해도 파이프 오르간이 들어서기에 당시 아파트는 층고(層高)가 너무 낮았다.

대구 주택가에 처음 등장했던 그 파이프 오르간은 '악기의 여왕'으로서의 본디 역할에만 충실해온 게 아니다. 지난 20년간 지역 문화계에 특유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음률 못지않은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낸 매개체였다. 오르가니스트이자 문화운동가인 이상경(53) '공간울림' 대표의 가녀린 손끝을 통해서다.

◆국내에 하우스 콘서트 처음 도입

'공간울림'(대구 수성구 상동)은 한국 음악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곳이다. 1994년 네덜란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 대표가 하우스 콘서트라는 새로운 개념의 음악회를 국내에 처음 도입했기 때문이다. 하우스 콘서트는 공연장보다 작은 공간에서 악기 연주 등의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어 연주자와 관객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지는 음악회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귀부인들이 자신의 살롱에 음악가를 초청, 지인들과 함께 감상하는 살롱 음악회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져 있다.

"유학하는 동안 서유럽 곳곳을 여행하면서 하우스 콘서트를 많이 접했습니다. 연주자와 2~3m 정도 떨어진 객석에서 연주자들의 숨소리까지 느낀다는 것은 행복한 체험이었지요. 하지만 서유럽의 사교 파티를 본떠 하우스 콘서트를 도입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악기를 나눠 쓰고 좋은 음악을 공유하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이었지요."

당시 하우스 콘서트의 관객은 이 대표의 이웃 주민, 제자, 지인들이었다. 적을 때는 청중이 달랑 두 가족인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웃들의 반응은 좋아서, 시끄럽다는 항의는커녕 음악회를 위해 자원봉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동네 음악회도 격식을 차려야 한다며 한겨울에 딸아이에게 원피스를 입혀 오는 이들도 있었다는 게 이 대표의 회고다.

"벌써 내년이면 하우스 콘서트가 20년을 맞습니다. 지방도시에서 시작한 실험적 시도치고는 성과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고정 팬도 1천 명을 헤아립니다. 아파트에서 시작해 대봉동 단독주택 시절을 거쳐 현재 건물로 옮긴 이후에도 돈 들여서 홍보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무대, 조명 등 하드웨어는 전문 공연장보다 못하지만 음악을 귀로 듣는 동시에 마룻바닥을 타고 전해져 오는 진동으로 느끼는 것은 색다른 감동이기 때문일 겁니다."

'공간울림'은 2007년 대구시로부터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받은 데 이어 2009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예술전용공간으로 선정됐다. 하우스 콘서트도 처음에는 바로크 오르간 연주회로 꾸몄지만 이제는 클래식과 재즈, 국악과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실력파 신인들이 등장하는 신예 초청연주회, 우리 국악으로 꾸미는 '풍류방' 연주회, 다문화가정을 위한 '사랑의 음악회', 다양한 악기의 앙상블을 감상하는 실내악 연주회, 학생들에게 무대 경험을 제공하는 향상음악회, 문화 소외계층을 찾아가는 음악회, 정기 재즈음악회 등을 마련하고 있다.

"'왜 아직 망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수시로 듣습니다. 하하하. 공연 티켓 값이라고 해봐야 5천원에서 2만원밖에 되지 않고 소극장이라서 좌석 수도 겨우 100여 석뿐이거든요. 공연장 운영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가족'지인들의 도움과 알음알음 찾아오시는 클래식 애호가들의 성원으로 꾸려가고 있어요.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였던 제 아이들이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음악회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많이 해주는 것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지역 대표 클래식축제 '서머 페스티벌' 기획

2003년 현재 자리로 보금자리를 옮긴 '공간울림'은 대구에서 문화의 문턱을 낮추고 클래식 저변을 넓히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자연스레 '작은 거인'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대표적인 것이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도심형 문화축제 기획인 '서머 페스티벌'이다. 2009년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에 이어 2010년 '유쾌한 바흐', 2011년 '러시아로 가는 음악여행', 2012년 '대구, 도나우가 흐르다'에 이어 올해는 한'독 수교 130년과 광부'간호사 파독 50주년을 기념해 '독일음악 秀作(수작) 걸다'가 성황리에 치러졌다.

"하우스 콘서트를 처음 기획한 지 15년이 되니까 스스로 기특한 마음에 어떤 기념행사를 갖고 싶더군요. 함께 사는 부부라면 기념 반지 하나 정도는 장만할 세월이 흐른 거잖아요. 제일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는 문화공동체를 위한 마을축제였습니다. 유럽을 오가면서 가장 부러웠던 문화 풍습이었거든요. 클래식 음악가 가운데 가장 우리에게 친숙한 이가 모차르트라고 생각해서 첫해의 주제를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라고 정하게 된 것이고요."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시민들이 순수 예술을 즐기면서 여유로운 휴가를 보낼 수 있게 해보자는 취지의 서머 페스티벌 시리즈는 예상 외의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대중성이 약한 정통 클래식 음악축제가 과연 가능할 것이냐는 우려를 깨고 대구를 대표하는 중요 음악제로 발전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국경을 초월해 문화로 소통할 수 있는 도심형 문화축제, 음악이 만들어내는 '울림'이 인간을 평화롭고 향기롭게 하는 '살림'이 되기를 바라는 이 대표의 순수한 마음이 통한 덕분이다.

"시민들의 과분한 관심이 늘 고맙지요. 그런데 무슨 일이든지 한번 시작한 것은 축소되기 힘든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3일짜리 흥겨운 음악놀이 판으로 기획했지만 이제는 2주일 동안 펼쳐지는 클래식의 페스티벌로 확대됐거든요. 객석 점유율도 90%를 넘고요.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커지지만 이 일이 우리 스스로와 아이들,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확고합니다. 음악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공로로 이 대표는 올해 초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2 한국음악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한국음악협회가 1979년 제정, 매년 시상하는 한국음악상은 우리나라 음악계의 한 해를 결산하는 큰 자리로 국내외 음악 발전에 이바지한 개인 또는 단체를 선정, 시상한다.

글'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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