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영처의 인문학, 음악을 말하다] 거슈윈의 자장가

영화
영화 '포기와 베스'에서 아이를 안고 서머타임을 부르는 클라라.

짐승들은 새끼를 돌볼 때 가장 사나워진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적자생존의 살벌한 생태계에서도 유일하게 어미들만은 새끼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내던진다. 모성애야말로 체내 생식을 하는 동물들의 가장 이타적인 자기희생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새끼를 향한 어미의 사랑과 애착은 본능적이면서도 숭고하다.

한 예로 땅에 둥지를 트는 새들은 여우가 접근하면 한쪽 날개가 꺾인 양 몸짓을 하며 여우를 둥지로부터 먼 곳으로 유인한다. 여우는 손쉬워 보이는 먹잇감을 따라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간다. 그제야 어미 새는 푸드덕거리던 몸짓을 멈추고 높이 날아오른다. 새끼의 생명을 구했지만 어미 새는 자기 자신을 상당 시간 위험한 상태에 노출시키고 있었다.

대부분의 수컷들은 힘든 구애작전에 성공하여 교미가 끝나고 나면 새끼의 출산과 양육은 암컷에게 미루고 떠나버리는 경향이 있다. 반면 대부분의 암컷은 홀로 남아 새끼를 출산하고 그것들이 성장해서 독립할 때까지 먹이를 물어 나르며 돌본다. 진화생물학자들도 암컷의 성은 착취당하는 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 길러보지 않은 사람, 자기 희생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철이 들지 않는다고 했나 보다.

한때 '월튼네 사람들'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버지니아의 시골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하여 아버지와 엄마, 8명의 남매가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작가지망생인 큰아들이 써내려가는 이야기였다. 드라마는 늘 창문 불빛의 하나 둘 꺼지면서 가족끼리 밤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월튼네 사람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렇게 많은 아이들을 낳아 큰집에서 북적거리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인생을 뜻대로 끌어오지 못했다. 삶이란 의도와 달리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는 것이다. 이따금 독실한 가톨릭 신자나 몰몬교 신자들이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는 모습을 보면 은근히 부러웠다. 사실 그렇게 많은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다는 생각의 바탕에는 경제적 풍요가 전제되어 있었다.

'서머타임'(Summer Time)은 조지 거슈윈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 1막과 2막에 나오는 자장가이다. '포기와 베스'는 등장인물이 모두 흑인들이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가 세광출판사에서 나온 '학생애창 365곡집'을 사다주셨다. 여기서 처음으로 '서머타임'을 알게 되었다. 아기를 재우며 부르는 자장가 '서머타임'은 남부 특유의 더위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곡이다. 이 노래를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중학생도 한여름의 나른한 공기를 악보를 통해서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물고기 수면 위를 날고/ 목화는 익어가는데/ 아빠는 부자/ 엄마는 멋쟁이'라는 가사에 와서 딱 멈춰버렸다. 너무나 낯설고 생경했다. "아빠는 부자, 엄마는 멋쟁이"라니 책에서든 어디서든 한 번 배운 적도 본 적도 없는 생소한 풍경이었다. 아버지는 단벌 신사, 엄마는 잔소리꾼 정도의 가사라면 쉽게 수긍이 갔을 텐데.

'서머타임'은 어린 내게 여름 휴양지의 권태로운 일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것은 당시에 유행하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주는 공허한 이미지와도 비슷했다. 모든 것이 채워져 더 추구할 것이 없는, 그래서 소비와 향락으로 자신을 아무렇게나 허비하는 삶. 1970년대 약진의 시대 속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중학생에게 죽도록 열심히 일하지 않고도 길고 지루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쩌면 이해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팝에 관심이 많던 때라 악보를 보고 열심히 노래를 배웠지만 "So hush, little baby, don't you cry~~" 거친 목소리로 열창하는 부분에서는 재즈의 넘치는 자유로움과 터질 듯 쏟아내는 고음의 에너지를 알 길이 없었다. 사실 '서머타임'은 '포기와 베스'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클라라가 아기를 어르며 여름의 한가롭고 멋진 생활을 꿈꾸는 노래이다. "아빠는 부자, 엄마는 멋쟁이. 그날이 오기까지, 어느 누구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 아기를 위해 부르는 이 노래는 가난한 가족이 꾸는 풍요의 꿈이기도 했다.

서영처 영남대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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