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애란의 청춘 발언대] 게임도 문화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PC방에 갔습니다.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계를 평정해 버렸다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를 체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친구들 여럿이서 깔깔대며 게임을 즐겼습니다. 백수가 된 것처럼 우리가 우스워 보이기도 하고, 또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것 같아 기분이 유쾌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한바탕 혈전(?)을 벌이고 나니, 스트레스가 풀리더군요.

간만에 느끼는 이 기분은, 어린 시절 순수하게 게임 하나만으로 가슴 설레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다 큰 여자애가 게임이라니, 좀 우습죠? 하지만 제 친구 또래에게 묻는다면, 저와 비슷한 마음으로 가슴 설레어 할 친구가 꽤 많을 겁니다.

유년시절 저에게 게임은 단순한 오락 이상이었습니다. 어린 제가 누군가가 되어보고,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였죠. 게임 세상에서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 수업 시간에도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흥분됐습니다. 새로운 게임을 기대하고, 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그만큼의 열정과 집중력을 가지고 무언가에 집중한 모습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최근 국회의 '게임중독법' 발의로 시끄러웠습니다. 게임으로 생겨난 사건 사고가 이젠 많이 알려진 일이기에, 그 법안의 배경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과연 규제를 함으로써 게임으로 인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늦은 밤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아이,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어른들. 그 아이가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여가는 자기 방에서 홀로 하는 게임입니다. 아이에게, 게임 말고는 다른 걸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는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방에서 홀로 하는 게임은 아이를 가족과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킵니다. 더 안타까운 건 이런 풍경이 결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는 겁니다. 한국 게임 문화의 많은 부분이 이런 성격으로 자라났습니다. PC방이 다 같이 게임을 하기 위해 찾는 곳이 아니라, 단지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의 장소처럼 인식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겁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이 게임을 못하게 하고, 게임을 없애는 건 아닐 겁니다. 게임이란 가상공간은 현실과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공하기에 매력적입니다. 여기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건, 현실에 그만큼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게임으로 파생된 문제의 원인은 '게임 그 자체'가 아니라 게임에 집착하게 하는 '환경'입니다. 아이에게 게임을 하지 말라고 다그치기보다, 게임 아닌 다른 것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아니면 가족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면 이 역시 다른 해결책이 되어주겠죠.

우리나라는 엄청난 게임 사용자와 시장을 가진 이른바 게임 강대국이라 합니다. 아니, '게임 문화대국'이 더 옳은 표현이겠네요.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개발자는, 한인타운의 PC방을 즐겨 찾았고, 자신들의 스튜디오에도 PC방을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함께 게임을 즐기는 PC방, 한국의 게임 문화를 알아본 겁니다.

'우리의 게임 문화가 건강한가'란 질문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건 비단 게임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더 나은 게임 시장, 개발 환경, 사용 여건과도 관련이 있겠죠. 그러나 상상력으로 무한히 누비고, 또 소통할 수 있는 매체인 게임. 이미 우리 사회에 그것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 아닐까요?

저는 우리나라 게임 문화의 저력을 믿고 또 응원합니다. 제 추억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즐겁게 게임할 날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대구경북 대학생문화잡지 '모디' 편집장 smile5_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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