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간경화 아내 돌보는 김율형 씨

엄마에 간 내준 아들 생각에 아빠는 뒤돌아 웁니다

김덕현(20
김덕현(20'대구 서구 비산동) 씨는 오늘도 어머니 이미화(48) 씨를 찾았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아들을 보며 이 씨는 자신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의 건강만을 걱정한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김율형(50'대구 서구 원대동) 씨는 요즘 병실 두 곳을 왔다갔다한다. 이달 9일 아내 이미화(48) 씨가 아들 덕현(20) 씨의 간을 이식받고부터 두 사람의 병간호를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예전보다 많이 수척해진 아내와 아들을 보면 가장으로써 제 역할을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내가 이만큼 아픈 줄 모르고 무심했던 제가 죄인입니다. 하루하루 사는 데 급급해 제대로 못 보살펴 준 제가 죄인입니다. 정말 두 사람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간경화로 쓰러진 아내

김 씨의 아내 이 씨는 심한 간경화로 지난달 4일 집에서 쓰러져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이 씨는 갑자기 매우 많은 양의 피를 토하고 병원으로 실려왔다. 병원에서는 "간경화가 심각하게 진행돼 복막염 합병증이 생겼다"며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벌써 15년째 간 질환을 앓으며 입'퇴원을 반복해왔다. 1999년 자궁 질환 때문에 수술을 받다가 B형 간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그때부터 계속 치료를 받았지만, 간경화로 진행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계속 병원을 들락날락했고, 올해 초에도 약 6개월간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겨우 상태가 나아져서 퇴원했다.

"집에서 피를 두 바가지 가까이 토해내더군요. 너무 놀라서 병원으로 빨리 옮겼는데 당장 간 이식을 하지 않으면 얼마 못 살고 죽는답니다. 하지만 당장 수술을 결정할 수가 없었어요. 수술시킬 돈이 없었거든요."

돈이 없었던 김 씨 가족은 발만 동동 굴렀다. 김 씨 가족들은 "일단 사람이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아들 덕현 씨의 간을 이 씨에게 이식하기로 했다. 상근예비역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던 덕현 씨는 간 이식을 위해 소속 부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덕현 씨는 지난달 29일 소속 부대의 허락을 받고 이달 9일 어머니에게 간을 이식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지만

김 씨 가족은 항상 가난에 시달려왔다. 김 씨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김 씨는 건축 일용직부터 시작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왔다. 그 덕분에 김 씨의 두 동생은 대학교까지 공부를 마칠 수 있었고 김 씨 또한 건설 관련 일감을 떼어와 시공하는 작은 사업체를 차릴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김 씨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2005년 김 씨의 사업은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일감이 더이상 들어오지 않았고, 같이 일하던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한 상황이 계속됐다. 결국 김 씨는 사업을 접고 다시 막노동을 시작했다.

"일을 하다가 많이 다쳤어요. 몇 년 전 전기 톱날에 왼쪽 엄지손가락이 잘려서 지금도 왼쪽 엄지손가락을 구부리지 못해요. 이것 때문에 장애등급 6급을 받았죠. 재작년에는 너무 무리하게 일하면서 어깨랑 손목을 다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받고 나서 무거운 걸 들 때마다 힘겨워지니 오래 일하는 건 무리입니다."

김 씨는 아들 덕현 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아들이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 진학도 하지 않고 입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걱정은 덕현 씨의 제대 후 미래다. 덕현 씨는 "어머니가 아픈 모습을 보니 '제대하면 일단 돈 벌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김 씨는 가난 때문에 덕현 씨가 자신의 삶을 물려받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정말이지 하루하루 밥만 굶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아왔습니다. 덕현이가 '가난하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생각하는 장래 희망이나 꿈을 생각하지 못하고 산 게 제 탓인 것만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아무리 모아도 수술비엔 모자라

병원에서는 아내 이 씨의 병원비를 약 6천700만원으로 예상했다. 간 이식 수술에만 3천500만원이 들었고 이후 회복기간이 길어지면 병원비는 더 올라갈지도 모른다. 간 이식을 받기로 한 날, 김 씨는 집안에 자신이 그러모을 수 있는 돈을 다 모아봤더니 이때까지 일해서 모아둔 돈 800만원 안팎이 전부였다.

은행 대출도 알아봤다. 하지만 지금 김 씨는 집 없이 부모님 집에 얹혀살아 담보로 잡힐 만한 것이 없다. 부모님 집을 담보로 잡아도 간 이식 비용에는 턱없이 모자라는데다 대출을 상환할 능력도 없었기에 결국 은행 대출은 포기했다. 그나마 이달 초에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로 지정되면서 국민건강보험 적용 항목은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기대하고 있다.

김 씨 가족의 사연은 현재 덕현 씨의 부대 내에도 퍼져 있다. 덕현 씨의 소속 부대는 덕현 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부대 안에서 자체적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약 200만원의 성금을 김 씨 가족에게 전달했다. 김 씨는 "덕현이 부대에서 이 정도로 신경을 써 주신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병원 비용에는 많이 모자라는 액수라 김 씨는 이래저래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김 씨의 정성과 덕현 씨의 효심 덕분인지 이 씨 병세가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죽음의 고비를 무사히 넘겨 준 아내가, 당연하다는 듯 간을 내어 준 아들이 너무 고맙다.

문제는 '자신'이다. 이제 가장으로서 또 다른 고비를 넘겨야 할 때지만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점점 나아진다고 하지만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을 볼 때마다 울컥울컥 할 때가 잦습니다. 나한테 시집와서 평생 나와 자식 뒷바라지만 하고 살았는데 이런 병을 얻으니 제가 미안하지요. 이제 나머지 일들은 어떻게든 제가 다 해 낼 테니 아내와 아들은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몸 추스르는 것만 신경 쓰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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