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학생들은 자연이 키웁니다"…정홍규 신부

중학교 학력 인증 받은 '산자연학교' 산파

정홍규 신부는 개교 10주년이 된 영천 산자연학교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경쟁이 아니라 협동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학교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며 활짝 웃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정홍규 신부는 개교 10주년이 된 영천 산자연학교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경쟁이 아니라 협동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학교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며 활짝 웃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을 키울 겁니다."

대안학교인 '산자연학교'(경북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가 최근 경사를 맞았다. 폐교된 오산국민학교 부지에 오산자연학교라는 이름으로 2003년 개교한 지 10년 만에 경북도교육청으로부터 중학교 학력 인증 기관으로 정식 인가를 받은 것. 10년 세월을 고스란히 이곳을 가꾸는 데 바친 교장 정홍규(60) 신부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10여 명의 학생들로 꾸린 학교가 어느새 60여 명의 학생들이 꿈과 끼를 키우는 곳으로 변했네요. 그동안 교실도 조금씩 넓어졌고 기숙사도 생겼습니다. 재학생 가운데 중학생은 40여 명인데 이제 이 아이들은 중학교 학력을 인정받기 위해 검정고시를 별도로 준비할 필요가 없게 됐어요. 오래 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하나 던 기분이에요."

정 신부가 이곳을 번듯한 학교로 가꾸기까지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설이 열악한데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정 신부를 힘들게 한 것은 부모들의 조급증이었다.

"풀을 잡아당긴다고 그 풀이 더 빨리 큽니까? 적지 않은 부모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녀를 이곳에 데려왔다가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기미가 보이자마자 다시 데려가 버렸죠. 그렇게 이곳을 떠난 아이들이 또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정 신부는 대안학교가 '문제아가 다니는 학교' '공부는 안 시키고 놀기만 하는 학교'라는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실제 일반 학교에 잘 적응하던 학생들도 생태교육 등에 관심이 많은 부모를 따라 이곳을 찾는다. 일반 교과과정도 모두 배운다. 체험학습을 강화하는 등 교육 방법이 다르고 토론과 보고서 작성을 강조하는 등 평가 방법이 다양할 뿐이다.

"이곳 학생들이 여느 아이들과 조금 다를 순 있지만 그게 틀린 건 아니잖아요. 우리 아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이곳은 자연 속에서 창의력, 상상력이 가득한 아이들을 키워내는 요람이 될 겁니다."

그는 각종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이들에게도 한마디 던졌다. 투자에 비해 효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선 안 된다는 것이 정 신부의 조언. "대안학교 경우 왜 아이들이 빨리 변하지 않는지 효율성을 따질 게 아니라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해요. 교육은 발효 기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산자연학교 교정의 돌 하나, 풀 한 포기까지 정 신부의 정성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정 신부에게 이곳은 아이들과 함께 사는 집이었다. 이곳에서 10년 동안 정 신부는 주눅이 들거나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던 아이들이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큰 기쁨을 맛봤다. 그런 그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교장직에서 물러난다. 다음 학기부터는 이영동 신부가 이 자리를 맡게 된다.

정 신부의 다음 계획은 '청춘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사업'을 벌이는 것. 우선 경산 하양 일대에 중생대 자연사박물관을 지을 궁리를 하고 있다. 종교 시설을 하나 더 짓는 것보다 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게 종교인의 의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벌이는 일이다.

"이 지역은 각종 화석, 공룡 발자국 등 중생대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어요. 박물관 사업은 아이들에게 생태학습 공간을 제공해 상상력을 키워주고 젊은이들에겐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지역 사회에도 활력소가 될 수 있고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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