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고양이 반지

어제 액세서리 함을 살펴보다 반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식빵 자세를 하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앙증맞게 올라앉아 있는 그 반지는 체셔를 데려오기 전 한창 고양이에 빠져 있을 무렵에 샀던 것이다. 그땐 고양이를 키워 보고픈 마음을 대리 만족하기 위해서 곧잘 고양이 모양 액세서리를 사곤 했다. 특히나 이 반지는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의 둥근 몸매와 넓적한 얼굴이 너무 매력적이라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몇 달이나 들락거리며 탐을 내다가 샀다.

반지를 구입한 후 너무 좋고 신나서, 늘 끼고 다니다가 그만 고궁 답사를 갔던 길에 잃어버렸다. 종묘부터 시작해서 창덕궁, 창경궁, 경복궁까지 한참을 돌아다니고 나서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시 찾으러 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지만 잃어버렸다는 게 너무 아쉬운 나머지 결국 같은 반지를 하나 더 샀다. 그 반지가 바로 지금 내 액세서리 보관함에 있는 고양이 녀석이다.

오랫동안 방치해 뒀던 때문인지 마치 갓 땅에서 발굴한 오래된 고고학 유물처럼 까맣게 변색 되어 있는 고양이를 몇 차례 세척제로 닦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은색 고양이가 나타났다. 닦아낸 반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쳐다보니 오랫동안 빛바랜 채 있던 탓인지 처음처럼 반짝거리진 않았다. 하지만 그 핑크빛 눈망울에 약간은 꼬질꼬질한 은색 고양이를 보고 있자니 묘하게도 '체셔'가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 고양이의 넓적한 얼굴과, 둥근 식빵 모양의 자세, 그리고 약간은 꼬질꼬질함까지 묘하게 체셔가 연상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체셔가 나와 일곱 해를 살아오며 많은 기억과 시간들을 공유하듯, 반지 고양이 역시 그의 몸체에 있는 자잘한 흠집들을 통해 내 곁에서 함께한 세월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비슷했다. 둘 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 저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나의 기억들이 하나씩 올라왔다.

문득 뮤지컬 '캣츠'에 나오는 명곡 'memory'가 떠올랐다. 여러 고양이들 중 가장 늙은 고양이였던 그리자벨라는 예전의 젊고 아름다웠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그때를 향한 그리움의 노래를 불렀다. 다행히도 나는 그리자벨라처럼 현재가 초라하고 괴롭진 않았지만, 반지 덕분에 떠오른 내 기억 중에선 추억보단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많다. 그래서 처음엔 신나서 고양이 반지를 끼고 집을 나섰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울적해졌다. 다소 슬프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념들이 자꾸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고양이 반지는 내 마음을 아프고 무겁게 만드는 슬픈 기억 그 자체였다. 결국 고양이 반지는 고작 하루 내 손에서 머물다가 다시 액세서리 함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내 취향의 둥글넓적한 고양이라 해도 그 고양이 덕분에 내 손가락이, 내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손가락에 끼우니 차갑고 매끄러운 반지와는 달리, 손을 뻗어 쓰다듬을 때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체셔는 매끄럽지만 따뜻하고 보드랍다. 7년간 함께해 오며 내가 체셔의 이런저런 모습을 보아 왔듯이 체셔도 20대의 나를 오롯이 보아왔다. 아마도 그간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나의 모습들도 많이 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엔 좋았던 기억도, 나쁜 기억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좋지 않은 기억들만 떠올려 내 얼굴에 쓰디쓴 미소를 띠게 만들었던 반지와는 다르게 체셔는 내 좋은 기억은 더 행복하게, 그리고 슬픈 기억들은 내려놓고 더 힘낼 수 있도록 위로하고 다독여 주었다. 그 어떠한 말이나 표정 없이 단지 둥글넓적한 귀여운 얼굴과, 특유의 고롱거림을 동반해서 말이다. 이젠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고양이 모양의 제품들을 이것저것 사거나 하지 않는다. 나의 든든한 체셔가 마치 액세서리처럼 내 마음속에서 있기 때문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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