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냉동고에 얼려 둔 찹쌀모찌 있어요?"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몸짱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남편이 오랜만에 야식을 원했다.
"엄마, 저는 매콤한 불향이 솔솔나는 닭발 먹고 싶어요. 아~" 이제 곧 성년이 되는 큰 딸은 오후 10시 30분경 요구사항을 내밀면서 입맛을 다셨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던 미식가인 작은딸이 벌떡 일어나 한 술 더 뜬다. "엄마 고소한 곱창 먹고 싶어요. 굵은 거 말고 가는 거 잘라서 먹는 거요." 그 말은 대창 말고 곱이 꽉 차있는 생곱창을 일컫는 것이다. 이런 메뉴들을 거론하고 있으니 나는 뭉티기에 양념장 콕 찍어서 와인 한 잔을 하고 싶어졌다.
평소 이른 저녁식사를 하는 습관을 지닌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를 가볍게 한 날, 한 명이 음식 이름을 불러 대기 시작하면, 일파만파 겉잡을 수 없어진다.
닭똥집 양념'프라이드 반반, 시래기 떡볶이, 양곱창, 양꼬치, 큰소라 숙회, 최근에는 문어 프라이드치킨까지 우리집 야식 리스트에 입성하였다. 엄마 때문에 파워풀한 미식 세계를 경험한 두 딸의 야식 리스트이다. 이 모든 것을 한방에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야식 백화점은 없단 말인가!
늦은 시각, 냉장고를 뒤져 밑간해 얼려 둔 닭봉을 해동시켜 그릴에 구워 내고, 비첸향 육포도 그릴에 살짝 굽는다. 혹시나 해서 저녁밥을 준비하면서 구워 둔 군고구마도 오븐에 함께 데운다. 늦은 저녁에 마셔도 되는 카페인이 없는 보리순차와 연잎차를 준비한다. 오늘 겨울밤 야식은 이렇게 대충 입막음을 한다.
몇 해전 큰딸이 종이를 자르다가 칼로 손가락을 깊이 베었다. 밤새 아려오는 손가락을 붙들고 잠을 들지 못하여 뒤척이는 애를 보고 있자니 참으로 안쓰러웠다. 시간이 빨리 흐르게 하는 수밖에 없다 싶어서,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자며 끙끙거리는 큰딸에게 야밤 데이트 신청을 했다. 남편과 작은딸이 자고 있는 조용한 집을 살짝 빠져 나와 북성로로 달렸다. 그곳엔 멸치 국물 진한 냄비우동과 연탄불향 솔솔 나는 돼지 석쇠불고기가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거리도 적당하고 왔다갔다 하는 시간과 먹는 시간, 먹고 나면 어느 정도 포만감으로 잠을 잘 청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두어 번 가보았던 동네 포장마차의 진한 멸치 육수의 냄비우동 맛을 기억해 내면서 밤길을 달렸다. 이 일대에서 제법 이름이 난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많이 다녀갔는지, 바닥에는 나무젓가락을 벗겨낸 종이가 뒹굴고 있었다. 서너 개의 테이블에는 젊은이들이 왁자지껄하게 야식을 즐기고 있었다. 이 집이 일대에서 소문난 맛있는 집인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우리가 주문한 우동 두 그릇과 돼지석쇠불고기가 등장했다. 먼저 우동 한 젓가락을 입에 넣은 순간 딸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삶은지 오래되어 푹 퍼진 면, 국물은 멸치가 발도 안 담근 것 같았고, 조미료 맛이 너무 많이 나 두 번째 젓가락질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조미료맛과 연탄향을 뒤집어 쓴 돼지석쇠불고기는 반 이상은 비계였다.
얼마전 뮤지컬을 보고 나오는 길에 출출한 우리가족은 블로그 이웃들의 포스팅에서 많이 보았던 콩국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콩국수의 국물보다 더 고소하고 달큰한 맛까지 가미된 따끈한 콩국의 맛을 기대한 나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테두리 선이 바랜 멜라민 식기에 담긴 멀건 콩국은 짜고 미지근하였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름냄새가 역한 찹쌀떡튀김의 양은 많기도 했다. 찹쌀떡은 고명이 아니라 주인공이었다. 콩국의 맛은 마치 내용물이 떨어진 자동판매기에서 나온 마지막 율무차의 맛과 흡사하였다. 주인 할머니에게도 미안하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하였다.
맛있는 야식일지라도 조금만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아도 가슴 한쪽에서 후회가 밀려오는 법인데, 맛없기까지 하면 화가 난다. 뭐 좀 간단하고 살 안찌고 몸에 좋고 맛있는 야식 좀 없을까? '차압~싸알~떠억.' 야밤에 목청 좋은 청년의 소리가 그리운 겨울밤이다.
푸드 블로그 '모모짱의 맛있는 하루'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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