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4부>외국의 은퇴 문화 ⑥나누는 삶이 행복하다

커피숍의 할머니들 지금은 자원봉사 중

여든이 넘어서도 여전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마리아(왼쪽) 할머니. 그녀가 1층 커피숍에 들어와 인사를 나누자 주변의 분위기가 환해지면서 생기가 넘쳤다.
여든이 넘어서도 여전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마리아(왼쪽) 할머니. 그녀가 1층 커피숍에 들어와 인사를 나누자 주변의 분위기가 환해지면서 생기가 넘쳤다.
실버타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50대 주부들. 이들은 1주일에 한 번씩 시설에 와서 할머니들과 대화도 하고 산책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실버타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50대 주부들. 이들은 1주일에 한 번씩 시설에 와서 할머니들과 대화도 하고 산책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원봉사자의 힘

일본 나가노현의 경로원 노인케어 시설. 이곳에는 등록된 자원봉사자만 100여 명이 넘지만 정기적으로 봉사하는 이들은 30여 명. 이들이 하는 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4시간 누워 지내는 노인들을 위한 천기저귀를 세탁하는 일이다. 자원봉사자의 힘으로 오랫동안 사용하던 종이 기저귀를 몰아냈다.

천기저귀를 사용하는 노인시설은 전국에서 유일할 것이라고 자랑하는 노인케어센터의 데즈카 구니코 씨는 "욕창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원봉사자에게 천 기저귀를 사용하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 천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세탁해서 들어온 천 기저귀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이 마을의 자원봉사자 30명은 돌아가면서 노인케어센터에서 나오는 천 기저귀를 세탁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 지 5년이 넘었다. 구니코 씨는 자원봉사자의 힘이 종이 기저귀를 없애고 몸에 좋고 보송보송한 천 기저귀를 사용할 수 있는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들 때문에 중증환자 노인들의 환경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고 자랑했다.

◆80세의 자원봉사자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요셉실버타운 1층 커피숍. 오후 2시가 넘자 한 할머니가 여기저기 자리를 다니며 바쁘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올해 나이 팔십이라는 마리아 할머니는 30년 넘게 이 시설에서 봉사하고 있다. 요즈음 하고 있는 봉사는 커피숍에서의 서빙이다. 서빙도 하고 주방에서 커피도 뽑아낸다.

마리아 할머니는 이곳 노인시설의 최고령 자원봉사자다. 1층 커피숍에는 시설의 노인뿐 아니라 동네서 오는 고객들도 있다. 그녀는 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대접하면서 커피숍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이곳에는 자원봉사자만 25명. 이 가운데 절반이 60세가 넘었다. 이들은 노인들을 산책시켜주고, 책도 읽어주며,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산책하는 일을 하고 있는 알 젠 하이머(68) 씨는 "20년 전부터 봉사를 했다. 한 주만 빠져도 할머니들이 왜 오지 않았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다정하게 묻는 바람에 이 일을 그만두기가 어렵다"며 웃었다. 할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늙음과 죽음을 미리 생각해 보게 됨으로써 삶의 깊이를 알아가는 것이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신청한 뒤 간단하게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나 어울리는 일을 배당받게 된다. 일을 몇 주간 해보고 적성에 맞고 즐거우면 계속 그 일을 한다. 알리스 요세코 요세코비치 관장은 "자원봉사자들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들은 피아노로 옛날 노래를 들려주고 옛날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치매가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자원봉사자 덕분에 가장 이상적인, 1대1 케어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의 입소자는 48명인데 비해 직원과 자원봉사자 실습생을 합하면 50명이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재능을 기부한다

독일 브레멘의 초등학교에서 낭독 수업을 하는 헤닝 쉐르프(69) 씨.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고 그 모습을 보노라면 행복감에 젖는다고 했다. 그는 "은퇴를 하고 나서야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더 이상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자원봉사는 삶의 의미와 기쁨을 주고 사회적 교류의 장을 마련해 준다고 덧붙였다. 독일의 60~69세 노인들의 37%가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스웨덴의 최대 자원봉사기관인 스톡홀름 스타츠미션. 매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까지 요일마다 요리 강습, 노래시간, 문학강좌 등 다양하게 짜여 있는데 강사 대부분이 자원봉사자로 꾸려지고 있다. 이들이 리더가 되어 지도하고 이끌어가고 있었다.

◆이런 단체도 있다

독일 브레멘의 '자원봉사협회'는 19년 전 설립돼 매년 사회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은 1천700여 명이 등록한다. 대부분은 은퇴한 사람들이다. 이곳에서는 인력이 필요한 기관들의 목록이 들어 있는 카탈로그를 해마다 출판한다. 또 교회나 사회복지 단체뿐 아니라 아주 작은 시민단체까지 돕고 있다.

자원봉사협회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의 목표를 생각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로 만들어졌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협회를 찾아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분야에서 직업적 경력을 쌓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이 일할 프로젝트를 결정한 후에는 그 분야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보상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각종 강의나 심화교육과정도 부수적으로 개설해 보다 더 전문화된 봉사활동을 돕고 있다.

고령전문가를 중개하는 '고령전문가서비스'는 다양한 직종을 망라해 독일 전역에 7천여 명의 전문직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건축기술자와 경영인 화학자 수공업자들로 숙련된 '고령전문가 서비스' 단체는 외국이나 독일의 중소기업에 보수 없이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취재후기= 나이 80에도 봉사할 수 있다는 것. 참으로 아름다웠다. 도움을 받아야 할 나이에 남을 돕는다는 것은 행복이었다. 독일의 자원봉사기관은 성당 교회 적십자 등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성당과 교회였다. 이들을 기반으로 자원봉사 신청을 받고 기관에서는 이들을 바로 현장에 투입하는 것이 아니고 적응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보통은 1주일에 2, 3시간 정도 봉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자원봉사가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전문직 능력을 가진 이들은 작은 중소기업에 자문역할을 해주거나 인접 외국에 자문가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나누는 삶, 그것은 품격 있는 사회의 조건처럼 보였다.

독일'스웨덴에서 글'사진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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