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영처의 인문학, 음악을 말하다] 소나무여!

추운 겨울이 오고서야 제 가치를 드러내는 소나무를 가장 잘 나타낸 그림으로 평가받은 추사 김정희의
추운 겨울이 오고서야 제 가치를 드러내는 소나무를 가장 잘 나타낸 그림으로 평가받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한 학기 강의도 끝나고 기말고사 감독도 끝난 주말 오후, 갑자기 몰려오는 공허함 때문에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교외로 차를 몰았다. 날마다 쫓기며 사는 일상에서 갑작스레 찾아오는 시간적 여유는 사람을 매우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 앞으로 두어 달간 급하게 서두를 일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왠지 즐겁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이제야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온전히 내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는데 학기가 끝날 때마다 맞이하는 이 씁쓸한 감정과 당혹스러움은 또 무엇인지.

내가 사는 곳은 조금만 차를 몰고 나가면 인적이 드문 첩첩 산과 깊은 숲이 펼쳐지고 큰 호수들이 나타난다. 한마디로 청정지역이다. 차창을 열면 청량한 기운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최근 들어 자연 속을 드라이브하는 것 또한 걷기 이상으로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갑지만 상쾌한 겨울 공기를 마시다 보면 황망하기만 하던 시간이 금세 다시 풍요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겨울 산의 풍경은 앙상하다. 하지만 이 앙상함이 허울 좋은 색깔들을 떨쳐버린 본질이라 생각하면 이 자체로 나름의 숭고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겨울나무는 구원이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생긴 그대로 골격을 드러낸 솔직함이 어떤 진정성과 호소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나목들 가운데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다. 겨울 소나무는 말 그대로 푸르디 푸른빛이다. 추운 겨울이 오고서야 제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소나무여 소나무여

언제나 푸른 그 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여 소나무여

언제나 푸른 그 빛

독일 민요 '탄넨바움'(der Tannenbaum)이다. 황량한 산속을 운전하다 보니 이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가사의 의미가 마음에 더 와 닿는다. 탄넨바움은 전나무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를 부르는 말이다. 전나무는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소나무가 되었다. 여타의 활엽수들과 달리 소나무는 어떤 역경이나 고난이 와도 독야청청하는 나무이며, 휘어진 채로 선산을 지키는 나무이며, 쓸쓸한 가을이나 눈보라 치는 겨울에도 변함없는 위용으로 서 있는 지조와 절개, 기개를 상징하는 나무이다.

자고 나면 모든 것이 낡은 것으로 변하는 빠른 세상에서도 절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나 가치들이 있는 법이다. 이 노래는 바로 이런 진정성과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담고 있다. 또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와 힘을 잃지 말라는 격려가 담겨 있다. 아마도 이런 교훈적인 면 때문에 오래도록 교과서에 실려 있었고 지금도 변함없이 애창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예로부터 소나무는 한국인들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매달아 액운을 물리쳤으며,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솔가지로 불을 피워 살았고 죽어서도 소나무로 만든 관에 누웠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나무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것은 선구자의 이미지이다. 찬바람 휘몰아치는 만주 벌판에서 말을 달리는 투사, 소나무에는 '선구자'의 이미지가 깊게 각인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급격한 변화가 만들어내는 혼란의 시대 속에서 각기 자기 목소리 내느라 시끄럽고 제 몫 챙기기에 바쁘지만 그래도 우리들 중심에 꿋꿋하게 서 있는 공통의 무엇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애국가에 나오는 가사처럼 소나무는 총체적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강인한 의지와 기상을 상징화하고 있다.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본래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그것을 두고 우리는 최고의 선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 않을까.

서영처 영남대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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