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남편과 나, 우리 딸 이렇게 3명이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이 그저 평범한 가정이었지만 행복했다. 우리 딸은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효녀였고, 내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었다.
다른 지역 대학교에 입학해 자취하던 딸이 어느 날 주말에 집에 와서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없어도 아빠랑 둘이서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어? 내가 시집가면 두 분이서 살아야 하잖아, 지금도 학교 때문에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뭔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고통과 허탈감=그로부터 사흘 뒤 경찰서에서 하늘이 무너지고 온 세상이 캄캄해지는 충격적인 연락을 받았다.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딸은 세상을 떠난 뒤였다.
딸은 자취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고, 남긴 유서 한 장만이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설명이었다. 경찰관은 이것저것 물었지만 나 자신도 딸의 죽음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면서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을 밝히고 싶었다. 그러나 수치스러움과 죄스러움 때문에 마음 놓고 말할 데도 없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인가 싶다가도 남편이 뭔가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어떤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떠난 딸이 원망스럽고 괘씸하기까지 했다.
온종일 울다가도 답답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고, 한 마디로 혼란스럽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집안은 엉망진창이 됐다. 남편은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왔다. 서로 같은 이유로 힘들어했지만 침묵할 뿐이었다. 담당 경찰관을 찾아가 내 딸은 결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니 딸을 죽인 사람을 찾아내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돼=경찰관은 이런 내게 대구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안내문을 건네주었다. 무슨 소용일까 싶었지만 답답한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담당자는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일반적으로 겪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유가족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을 찾은 듯한 희망이 생겼다. 센터를 찾아 매주 한 번씩 상담을 받았고, 그러면서 내가 겪는 문제들이 자살 유가족 누구나 겪는 문제이며, 이것을 잘 정리해서 극복하지 않으면 훗날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을 들었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위로가 됐다.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며 마음이 후련해졌고, 대화를 통해 복잡하고 혼란스럽던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차츰 그간 내버려두었던 집안일을 돌보는 여유도 찾게 됐다.
자살 유가족 프로그램 '자유함'에서는 떠나보낸 가족에 대한 감정을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나누며 진정 공감하고 위로하며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마음으로 떠나보내지 못했던 딸을 조금씩 떠나보낼 수 있었다.
◆감정에 솔직해지는 안전지대=지금은 센터에서 월 1회 열리는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인 '어우르기'에 나가고 있다. 때로는 다른 구성원들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게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소중하다. 이곳은 매 순간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연습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안전지대이다. 남편과도 딸에 대한 이야기를 애써 감추거나 피하지 않고 할 수 있게 됐다.
남편도 같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 같다. 딸을 떠나보낸 아픔을 내 삶과 함께하는 방법에 익숙해지고 있다. 내가 잘사는 것이 딸을 위하는 길이고 딸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가능하다면 자살 유가족들이 슬픔과 고통을 함께 극복하고 치유하는 자조모임에 계속 나가 새로운 참여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게 대구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팸플릿을 건네준 경찰관이 참 고맙다. 관심 어린 작은 행동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자료제공=대구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053)256-0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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