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의 대기환경이 지난 20여 년 동안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에 취약한 조건으로 악화되고 있다. 풍속이 줄어 대기 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탓에 대기오염물질을 머금고 있는 연무(煙霧)의 발생일수가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어 주민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
◆유해 미세먼지 섞인 연무 발생 급상승=대구지역의 주민들은 매해 늘어나는 연무에 시달리고 있다. 연무는 매연이나 자동차 배기가스 등 미세한 입자가 대기에 떠 뿌옇게 보이는 현상으로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기상청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91~2013년 사이 대구지역 연무 일수가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이달 18일까지 통계) 연무 일수는 101일로 분석기간인 23년 동안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연무 일수가 3일뿐이었던 1991년에 비해 무려 33배나 늘어난 수치다. 1주일 중 2일은 연무가 꼈다는 셈.
연중 연무 일수는 일정 수준을 유지해왔다. 1990년대엔 1995, 1996년을 제외하곤 연중 약 20~40일 정도 연무가 발생했다. 연무 일수가 10일이 넘는 달도 1996년(2개월)과 1997년(1개월) 두 번뿐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연중 연무 일수는 10~30일을 유지했다.
하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연무 일수는 급속하게 늘어났다. 2008년 연무 일수는 이전 해의 3배가 넘는 95일을 기록했고, 10일이 넘는 달도 4개월이나 됐다. 이후에도 연중 80일을 계속해서 넘어서는 연무 일수를 보였다. 특히 올해는 이달 18일 현재 연무 일수 101일을 기록하고 있고, 10일이 넘는 달이 5개월이나 된다.
월별로 보면 1년 중 2, 3, 6, 11, 12월 등이 최근 6년 사이 눈에 띄게 연무가 늘었다. 이 중 6월을 제외하면, 초겨울에서 늦겨울까지의 연무 일수가 늘어난 것이다. 겨울철(11~1월) 92일 동안의 연무 일수를 비교하면, 2001~2006년엔 2~5일뿐이었고, 많아야 8일이었다. 하지만 2007년 겨울부터 20~30일 수준으로 연무 일수가 급상승했다.
문제는 연무가 며칠씩 연달아 끼는 날에 미세먼지 농도도 평소보다 2, 3배나 높아져 주민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엔 이달 3~9일 연무가 계속해서 관측됐다. 이 시기 동구 율하동의 하루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최고 123㎍/㎥를 기록해 환경기준(100㎍/㎥)을 넘어섰다. 평소 50㎍/㎥인 미세먼지 농도가 2배 넘게 상승한 것이다. 올 1월(12~18일)과 3월(6~10일)에도 잇따라 연무가 발생했는데, 이 기간 율하동의 하루 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땐 각각 기준치를 넘어선 102~158㎍/㎥와 113~148㎍/㎥를 나타냈다.
◆"약해진 바람이 연무 부추겨"=연무 일수가 늘어난 배경엔 풍속의 감소가 있다. 1991~2013년 대구지역 풍속을 비교한 결과, 연평균 풍속이 1991년 2.97㎧에서 올해 2.00㎧으로 32.66%나 줄었다. 깃발을 가볍게 날리게 한 바람이 나뭇잎을 살랑거리게 하는 수준으로 약해진 것이다.
시기별로 나눠서 보면, 1991~2000년 10년 동안 평균 2.68㎧이던 것이 그다음 10년인 2001~2010년에 2.28㎧로 떨어졌다. 최근 3년 동안 평균 풍속은 2.12㎧로 더 낮아졌다. 1990년대엔 평균 풍속이 대부분 2.60~2.90㎧ 수준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도 2.30~2.50㎧ 정도였다가 2008년부터 2.10㎧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연무 일수가 급증가한 시점과 비슷하다.
특히 겨울철 평균 풍속은 해를 거듭하면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 겨울철(11~1월) 92일 동안 하루 평균 풍속이 3.0㎧을 넘어선 날은 1991~2000년 평균 33.1일이던 것이 2001~2010년 22.5일로 10년 사이 11일이나 줄어들었다. 최근 3년간은 13일로 극감했다. 이 중에서 상대적으로 센 바람인 4.0㎧ 이상을 기록한 날의 비중은 1990년대 47.13%에서 2000년대 34.67%, 2011~2013년 12.85%로 잇따라 줄었다.
백성옥 영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유해성을 띤 미세한 알갱이가 포함된 연무는 주로 가을과 겨울철에 많이 나타나는데 풍속이 발생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바람이 줄면 외부에서 오염물질이 유입되지 않더라도 매연과 배기가스 등 내부 오염원이 대기에 계속 축적돼 공기 질이 나빠진다"고 설명했다.
◆대구의 숨구멍 '바람길'이 막혀=전문가들은 도심 내 고층 건물과 바람길 역할을 하는 도시하천 주변의 건축물 등을 풍속 저하의 원인으로 꼽았다. 도시의 인공지형이 풍속을 떨어뜨려 대기 순환을 정체시킨다는 것. 이에 공장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 등 지역에서 배출한 오염원이 더해지면서 대기오염이 심해진다는 지적이다.
바람은 대구 도심을 지나며 각종 건물에 부딪쳐 속도를 늦춘다. 대구 지역에 30층 이상의 고층 건물만 35곳이다. 수성구가 13곳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달서구(11곳), 중구(5곳), 북구(4곳), 동구(2곳) 등의 순이다. 1층을 약 2.5~3m로 잡으면 이들 고층 건물은 높이가 약 75~90m 이상이 된다.
도시의 또 다른 바람인 '산곡풍'도 건축물 등에 의해 흐름을 방해받고 있다. 산곡풍은 하루 중 밤엔 산에서 도심 쪽으로 내려오고, 낮엔 도심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바람이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도시는 숨을 쉬듯 대기를 순환시키고 공기 속의 오염물질을 희석하게 한다. 문제는 산곡풍의 최고 높이가 30~50m 정도이기 때문에 건물이 10~20층만 돼도 바람길이 막힌다는 것이다.
산곡풍의 주요 통로는 도시하천으로 앞산 자락의 신천, 팔공산 자락의 불로천과 율하천, 북구의 동화천과 팔거천 등이 있다. 이들 하천 주변엔 아파트 단지 등 건축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신천은 수성구 파동부터 강변을 따라 아파트가 들어섰고, 불로천 인근엔 이시아폴리스, 율하천 옆엔 택지개발지구가 각각 형성돼 있다. 동화천 양옆으로 북구 동변'서변동 아파트 단지가, 팔거천 역시 강을 둘러싼 북구 매천동과 태전동, 동천동 등지에 대규모 주거지가 조성돼 있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도시 중심의 건물들은 서쪽에서 불어와 대구를 관통하는 편서풍의 흐름을 방해한다"며 "팔공산과 앞산 등 분지를 둘러싼 산들이 대구의 허파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들 산으로 오가는 바람의 길목에 건축물들이 어깃장 놓듯 들어서 있다"고 말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 연무란
습도가 낮을 때 대기 중에 연기와 먼지 등 미세한 입자가 떠 있어 뿌옇게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바람에 날린 먼지나 황사 등 천연의 먼지가 공기 중에 섞여 발생하지만, 도시에선 공장이나 주택 등에서 나온 연기나 매연, 자동차의 배기가스 등이 주요 원인이다. 연무가 많이 끼면 시정이 나빠지고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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