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64'여'대구 북구 태전동) 씨는 "살면서 행복을 느낀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김 씨는 태어나면서 일찍 부모를 여의었고, 가난은 항상 김 씨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초혼, 재혼을 거치면서 함께했던 남편 세 명도 김 씨를 불행하게만 했다. 김 씨의 곁은 고아원에서 데려와 김 씨로부터 딸처럼 보살핌을 받은 민정(가명'43'여) 씨가 지키고 있다. 김 씨는 지나간 세월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온갖 힘든 세월 다 겪고 나니 남은 건 늙고 병든 몸밖에 없네요. 어지간하면 남의 도움 안 받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첫 남편에 속다
김 씨는 군위에서 1남 2녀 중 첫째 딸로 태어났다. 워낙에 가난한 집이어서 김 씨가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김 씨는 어린 나이에 공장에 일하러 나갔고, 공장에서 첫 남편을 만났다. 그는 김 씨에게 잘해줬고 김 씨도 그를 따랐다. 남편은 김 씨에게 자신의 고향인 전라도에 가서 같이 살자고 했다. 삶을 버티기 힘겨워하던 김 씨는 그를 따라나섰다.
남편의 고향에 도착했을 때 남편의 누나라는 사람이 김 씨를 맞았다. 하지만 남편과 누나라는 사람의 관계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결혼한 뒤 남편은 김 씨를 멀리했고 누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잠자리 또한 김 씨가 아닌 누나와 같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씨는 남편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은 이미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누나라는 사람이 사실은 부인이더군요. 자신을 총각으로 속인 뒤 날 꾀어 고향으로 데려와서는 식모처럼 부려 먹은 거죠. 그 집에서 졸지에 식모 취급을 받으면서 온갖 험한 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집안일부터 농사일까지 거의 혼자 했어요. 남편의 실체를 알고 나서는 더는 그곳에 있을 수가 없어 뛰쳐나와 버렸죠."
첫 결혼생활이 그렇게 파국으로 끝난 뒤 김 씨는 친정인 군위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 김 씨 나이는 서른 살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남편을 만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씨에게 불행은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두 번째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두 번째 남편은 친정 근처에 살던 사람이었다. 김 씨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적어도 더 이상 힘든 삶은 없을 거라는 믿음에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바람조차 사치라는 걸 알게 됐다.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 버린 것이다. 원인은 뇌경색. 쓰러진 남편은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김 씨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겨내야 했다. 남편을 잃고 먹고살기 막막해하던 김 씨를 위해 마을에서 김 씨에게 동네 구판장 운영을 맡겼고, 이를 통해 힘들지만 근근이 견뎌 나갔다.
그러던 중 16년 전 세 번째 남편을 만나 대구에서 살게 됐다. 남편과 6년 정도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중 이번엔 김 씨의 건강이 나빠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몸이 붓기 시작했고, 결혼 전부터 앓고 있던 당뇨병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만성신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이 나빠졌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복막 투석으로 시작했지만 혈액 투석을 해야 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죠. 그렇게 10년을 앓아왔습니다. 제가 아프기 시작할 무렵 남편도 뇌경색으로 쓰러지더니 결국 갈라서자고 하더군요. 더 이상 저를 돌봐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김 씨는 만성신부전증을 앓기 시작한 10년 전 남편과 합의이혼했고, 이후 힘겨운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김 씨는 민정 씨와 고종사촌 오빠의 돌봄을 받아야 했다.
◆살고 싶어 이식은 받았지만
김 씨의 신장은 점점 상태가 나빠져 이식을 받지 않으면 더는 살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중 이달 8일 병원으로부터 신장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발생한 뇌사자의 신장을 공여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씨는 당장 병원으로 갔고 9일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문제는 수술 비용이었다. 김 씨는 대구에 온 뒤 식당일부터 날품팔이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만성신부전증을 앓기 시작한 뒤 더는 일할 수 없었다. 김 씨의 수입이라고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돼 받고 있는 생활보조금 40만원 안팎과 민정 씨가 가끔 보내주는 용돈 20여만원이 전부다. 김 씨는 "살고 싶은 마음에 수술을 받았지만 깨고 나니 막막하다"고 했다.
신장 이식 수술비 등 김 씨에게 청구된 병원비는 약 800만원. 일을 전혀 하지 못해 모아놓은 돈도 없고, 민정 씨나 친척에게도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나마 회복 속도가 빨라 건강을 되찾고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김 씨는 "동생들도 다들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 차마 손을 벌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한 번도 길게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나온 세월이 너무 고통스러워 딸처럼 돌봐왔던 민정 씨에게도 쉽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다. 신장 이식을 받은 뒤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것이 느껴져 다시금 삶에 대한 희망이 생겼지만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세 명의 남편이 거쳐 가는 동안 농사부터 공공근로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하지만 삶은 늘 고통스러웠고 몸은 망가져 갔죠. 이제라도 남은 인생 한번 잘 살아보고 싶은데, 이마저도 저에겐 사치인가 봐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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