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국어 선생님이셨던 도광의 시인이 구독을 적극 권장해서이다. 그땐 기사도 거의 한문으로 이루어져, 처음엔 읽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자꾸 펴들고 읽다 보니, 어렵던 한문도 조금씩 깨우쳐 가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이 있지만 거꾸로 자주 보다 보면 알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익힌 한문이 우리 세대치고는 수준급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신문구독은 계속되었고, 심지어는 군에 가서도 볼 수 있었다. 민간 신문을 다루던 정훈부서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이다. 제대 이후에도 지금까지 쭉 이어져, 평생을 신문과 함께하게 되었다. 요즘도 중앙지와 지방지를 1부씩 보고 있다. 신문읽기는 오랜 습관이 되어서 이젠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할 지경에 이르렀다. 내게 신문읽기는 단순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세상읽기인 것이다.
필자는 원래 글쓰기와는 무관하게 살았다. 젊은 시절 이른바 '문청'(文靑'문학청년)도 아니었고, 책상머리에 앉아 글을 쓰는 직업도 가진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신문읽기 덕분으로 볼 수 있다. 아시다시피 신문기사는 완벽한 문장을 구사한다. 사설 같은 경우는 서론-본론-결론이 뚜렷한 논설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몇 십 년간 생활화된 신문읽기 습관은 자연스러운 글쓰기로 이어졌다. 이는 필자가 글을 잘 읽히게 쓰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본다고 종이신문을 멀리하는 분들이 있다. 아예 안 보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열독성(熱讀性)은 현저히 떨어진다. 종이신문은 펼치다 보면 기사가 한눈에 다 들어오지만, 인터넷판은 그렇지가 못하다. 제목을 보고 찾아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 보니 '낚시성' 제목이 남발되는 것이다. 또, 온라인 특성상 아무래도 건성건성 건너뛸 수밖에 없다. 대충 제목만 훑어보는 것으로는 신문사가 심혈을 기울인 기획, 심층취재 등 아까운 기사를 놓치는 수가 많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신문을 펴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교육적으로 좋은 일이다. 면학 분위기에도 한층 도움이 될 것이다. 부모는 TV를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들어가서 공부를 하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히는 버릇을 들이면 논리적 사고에도 큰 도움이 된다. 따로 논술 공부를 안 시켜도, 논술시험 대비까지 가능해진다. 생각을 글로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필자는 신문을 읽고 삶의 질이 달라졌다. 진실로 그렇다.
장삼철/(주)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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