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미술이다.'
건축이 공학의 한 분야에서 예술의 반열로 승화했다. 최근의 트렌드로 보면 건축가는 이미 예술인이다. 그중에서도 미술가다. 그런 점에서 대구경북은 예술품의 보고다. 손에 꼽을 만한 명건축물이 즐비하다. 유교와 불교의 전통이 뿌리깊은 지역 특성상 전통 건축물은 전국 제일이다. 어디 전통 건축물뿐인가. 근현대 건축에서도 대구는 보고다.
2014년 한 해 매일신문은 대구과 경북의 명건축물을 찾아간다. 모든 시대를 다룰 수 없어 근현대로 시기를 한정해서 감상의 기회를 갖는다. 건축물로서의 실용성과 함께 예술품으로서의 미적인 측면까지 다룰 예정이다. 매일신문의 건축물 여행에는 대구경북 지역 대학교수들과 건축사들이 함께한다.
되살아나는 대구의 근대 건축
파리에서 유학할 때, 한 지인이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라면서 사랑스러운 도시에 대한 찬사를 쏟아 냈다. 바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던 유학생활이었기에 나는 반문을 했었다. 그 도시에서 오래도록 살고 있는 나로서도 잘 느끼지 못했는데 무엇이 그토록 이 도시가 사랑스러운지를.
그의 대답은 이랬다. 당신이 3번째 방문하는 파리는 20년 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인 반면, 당신이 살고 있는 서울은 10년 전의 기억조차도 지니지 못하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만 가는 도시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 잠시 머물렀던 도시임에도 20년 전의 당신의 기억을 발견할 수 있는 도시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노라고, 그래서 파리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도시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라고.
10년 전 대구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서 우연히 길을 거닐다가 마주친 도심의 골목길에서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추억을 발견했다. 그것은 오래도록 잊혔던 나의 지나간 삶들을 되살아나게 했다. 대구의 골목길에서 발견하는 이름 모를 허물어져 가는 건축물은 시간의 축적이 지닌 기억의 무게라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건축가로서 새로운 건축물을 설계하면서 가졌던 성취감 이상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몇 명의 건축가들이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을 주제로 건축전시회를 가지게 되면서 오랜 세월을 말없이 버텨온 작은 목조건축물을 만나게 되었다.
◆'삼덕상회'
대구읍성이 철거되고 근대도시계획에 따라 북성로에 지어진 전형적인 상가주택인 이 건축물은 근대 도시 가로가 형성되면서 근대산업도시의 생태계에서 태어나고 적응하면서 오늘날까지 이 시대를 버티고 있었다. 근대의 삶에서 현대까지의 삶을 이 작은 건축물은 묵묵히 담아내고 있었다.
도시형 상가주택은 유럽, 동남아,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도시 가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전형적인 건축유형이다. 이 건물도 대구읍성이 철거된 후 '마치야'의 한 유형인 상가주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도시 가로를 중심으로 발달된 상가주택으로 1층은 상가, 2층은 주택으로 사용된 주상복합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가로의 전면 폭 3.6m, 세로가 15m인 좁고 긴 대지 4필지에 4채의 건축물이 벽을 공유하며 붙어 있는 건축물로, 도시 가로형 상가주택에 많이 나타나는 유형이다.
처음 접했을 때 건물의 전면은 삼덕상회라는 커다란 간판과 함께 목조건물임에도 외형에서는 목조건물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감추어져 있었다. 1층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장사를 하지 않아 먼지투성이에 쓰레기로 가득했으며, 2층은 방치되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했지만 벽 사이와 천장 사이로 보이는 목조기둥과 왕대공트러스를 비롯한 목재의 상태는 오랜 시간을 대변하고 있었다.
실측을 하고 도면을 작성하면서 디테일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감춰진 보물을 발견하듯이 하나 둘 세월의 흔적을 추적하는 즐거움은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토토가 오래된 필름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이라 할 수 있다. 카페를 위한 설계를 진행하면서 복원이 아닌 현재적 시점에서의 활용을 위한 건축적 시도를 제안했다.
작은 대지에 최대한의 공간적 활용을 위해 1층 입구에서부터 2층 다실에 이르기까지 이용자들에게 최대한의 동선을 유도한다거나, 좁고 긴 건축물의 내부공간에 최대의 깊이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장치함은 작은 건축물에서의 최대의 공간감을 느끼게 하려는 건축적 제안이다. 삼덕상회 간판을 그대로 카페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음도 기억의 소중함을 지속하고자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삼덕상회 오픈 후 북성로에 접하고 있는 많은 건축물들이 삼덕상회와 같은 시간성에 놓여 있음을 알았고 다음 프로젝트인 공구박물관으로 이어진다.
◆공구박물관
공구박물관을 처음 대했을 때, 외형은 콘크리트 블록조의 허름한 식당건물이었고 몇 년째 장사를 않고 비워져 있었기에 거의 폐허로 남아 있었다. 실측과 함께 내부를 살피면서 건축물의 준공연도가 1936년에 지어진 목조 건축물임을 알게 되었고, 수차례의 증축을 통해서 원형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실측과 함께 하나 둘 원형을 예측하면서 건축물의 디테일을 발견해 가는 즐거움은 삼덕상회에서의 즐거움의 연속이라 할 수 있었다. 원래의 1층 바닥에 여러 차례 덧대어진 30㎝ 이상의 시멘트를 드러내고 나서야 원바닥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2층 바닥 또한 10㎝ 이상의 시멘트를 드러내고 나서야 원형의 목재 마루판과 다다미 바닥이 드러났다. 철골 프레임의 구조보강과 함께 전면부의 목조기둥이 모두 없어진 상태였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나머지 목조기둥의 하부 대부분은 썩어 구조재로서 재활용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요구되었다.
건축물의 용도가 북성로의 공구들을 대변하는 공구박물관이었기에 외관은 가능한 한 원형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전개되었으며, 따라서 아래층은 공구를 상설전시하기 위한 전시장으로, 2층은 각종 세미나나 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변적인 칸막이의 교육실 및 다다미방으로 계획되었다.
확장된 1층 전면의 도로변 입면은 1m 후퇴되어 구조보강과 함께 원래의 위치로 되돌렸으며, 후면부의 외부 콘크리트계단은 철거되고 원래의 내부 목조계단으로 되돌려졌다. 목조구조 사이의 회벽 면에 덧대어진 시멘트 미장은 제거되고 목재 창을 설치함으로써 유추된 원형으로 재생되어졌다. 변경 전후, 처음 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북성로를 접하고 있는 상가주택들의 원형이 어떠하였음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1980년대까지 대구의 대표적인 상가건축물이 즐비했던 북성로, 현재는 대구의 중심에 있음에도 대구에서 가장 낙후된 거리로 전락했다. 재개발의 열망에 따라 보수하지도 못하고 방치돼 있는 곳으로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 북성로에 새로운 재생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올 10월에 발효된 도심재생법 때문이다. 낙후된 도심을 살리기 위한 재개발이 아닌 재생을 위한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대구는 이미 근대골목길을 테마로 한 도심투어가 전국적인 관광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동성로, 남성로에 이어 내년에는 북성로와 서성로 재정비가 예정되어 있다. 도시의 가로는 각 필지마다 건축물은 개인 소유지만 도시 가로 측면에서는 공공의 자산이라 할 수 있어 공공적인 관리가 요구된다. 대구를 대표하는 주가로 중심으로 한 도시 가로의 건축물은 대구의 정체성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북성로와 서성로를 접하고 있는 많은 건축물이 덧씌워진 외피를 벗어던지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싶어 한다. 문화재 지정에 따른 박제된 원형복원이 아닌 현재적 시점의 재활용 관점에서의 재생을 바라고 있다.
도시의 역사성이 박제된 문화재 가치만으로 존재함은 시간의 연속성을 차단하고 있어 우리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지속시키지 못한다. 전통성이나 역사성은 우리의 삶 속에 담겨 있어야 한다. 오래된 거리의 건축물이 담고 있는 시간의 흔적은 도시 속의 일상을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도시는 어떠한 이미지를 가져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떠한 도시를 사랑하는가?
우연히 스페인의 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 경주 양동마을과 비슷한 감동을 느낀 것은 도시 삶의 일상성에서 보편성을 깨닫게 한다.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의 이미지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 오래된 마을에서 가지는 보편적 감응이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도시는 모든 도시민의 기억을 담고 있어야 하며, 따라서 젊은이만이 아닌 중년, 장년 및 노년층도 함께 찾고 어울릴 수 있는 세대 간 소통의 공간, 공생의 공간이어야 한다. 쓰러져가는 오래된 건축물 속에 도시의 삶이 존재한다면, 따라서 이를 재생하려 함은 대구 도시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작고 화려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해질 무렵 우연히 마주친 삼덕상회 카페에 앉아 시간 여행을 해 보심은 어떠할지? 풍요로운 도시의 삶을 앞에 두고…. 건축을 통해서 나를 본다.
도현학 영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사진·김태형 기자 thkim21@msnet.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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