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전망이 밝지 않고 문학이 전체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는데도 재능 있는 여러 문학 지망생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야심 찬 작품을 보내온 것이 우선 감동스럽다. 그러나 그 훌륭한 착상과 높은 기개를 흠집 없이 옮겨놓을 수 있을 만큼의 구성력과 필력을 갖춘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이 여전히 유감이다.
예심을 통과한 열 편의 작품 가운데 세 편의 작품이 최종심에서 오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파리'는 착상이 좋다. 인간사의 한 면목을 한 마리 파리의 눈으로 바라본 이 작품은 재기 있는 세태풍자소설이다. 그러나 처음 몇 대목을 읽으면 결말을 알 수 있을 만큼 구성이 빈약하여 파리의 눈이라고 하는 그 시각의 특수성이 드러나지 않았고, 파리 목숨이라고 하는 그 죽음의 비극성이 부각되지 못했다. 간단히 말해서 주인공이자 화자인 파리가 서사의 도구로만 사용된 것이 아쉽다.
'확률'은 매우 뛰어난 필력을 보여준다. 글에 힘이 넘쳐서 처음부터 끝까지 기맥이 죽어 있는 단락이 없다. 일상의 서술과 철학적 관념의 희롱을 배합하는 솜씨도 탁월하다. 아쉬운 것은 서사의 능력이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결말이 되는 실패한 소개팅의 일화는 꿈을 잃고 경쟁에 시달리는 한 세대의 고뇌를 드러내기에 너무 빈약하다. 잘 만든 이야기는 시간의 깊이에 대한 통찰에서 온다.
당선작으로 뽑은 '뱀'은 모든 노력과 기획이 빚더미로 되돌아오는 농촌의 참담한 현실과 성장 없이 성장하는 어린이들의 비극을 한 아이의 눈으로 그린 알레고리 소설이다. 구성력과 필력도 만만치 않다. 학대받는 아이들에게서 학대받는 뱀들의 이야기와 친척 집에 얹혀살며 제 처지를 잉여적 존재로 여기는 아이가 한 마리 뱀이 됨으로써만 갇힌 세계에서 탈출하는 이야기의 평행적 상관관계는 희망 없이 몰락하는 한 사회에 대해 복합적인 화두를 제시한다.
당선자를 축하하며 모든 투고자들의 정진을 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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