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신갑오경장'

2014년 새해 원단(元旦).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광장에 섰다. 여기서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이끄는 중국이 덩샤오핑(鄧小平)이 내세웠던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를 버리고 '주동작위'(主動作爲'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를 전면에 내걸고 질주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중국은 이제 세계 무대의 전면에 나서 미국과의 한판 승부도 불사하겠다는 '대국굴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 노백성(老百姓)들의 얼굴에서는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시 주석은 직접 중국 인민과의 '소통'에 나선다. 12월 28일 시 주석은 이곳 천안문광장과 멀지 않은 '칭펑'(慶豊)이라는 한 허름한 만두 가게를 예고 없이 찾아, 직접 줄을 서서 21위안(약 3천600원)을 계산하고 만두 1인분과 반찬을 받아들고 시민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시 주석의 이 같은 행보는 그가 추진하는 관료주의와 형식주의, 향략주의, 사치 풍조 등 '반(反)부패' 행보와 맞물리면서 중국 인민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불통'의 리더십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시 주석의 얼굴 위에 오버랩됐다.

다시 '갑오년'(甲午年)이다. 60년 전 1954년에는 한국전쟁이 끝났고, 120년 전인 1894년은 '갑오경장'과 동학농민혁명이 있었던 격동의 시기였다. 당시 서구 열강과 중국, 일본 등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각축전을 벌이는데도 조선은 개화파와 척사파 간의 파당정치에 몰두해 있었다. 다시 갑오년이 돌아왔지만 미국과 일본, 중국은 다시 동북아 패권을 둘러싸고 갈등 수위를 고조시키고 있고, 우리는 1년째 대선 불복과 철도노조 파업 등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각계 인사들에게 보낸 연하장을 통해 "갑오년 새해, 말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 경제가 달리는 말처럼 힘차게 뻗어가고, 대한민국이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다. 그러나 국제 정세와 세계경제에 대한 위기 의식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 크게 아쉽다. 우리가 처한 한반도 주변 정세 등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 없이는 도약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대국으로 발돋움한 중국의 적수가 되지 못하면서 '강소국'의 반열에 오르지도 못한 어정쩡한 처지로서는 도광양회도 주동작위도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선택한 해법이 '신갑오경장'이다. 그는 연말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새해가 갑오년인데 120년 전 갑오년에 '갑오경장'이 있었다. 경장이라는 말은 거문고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을 때 낡은 줄을 풀어서 새 줄로 바꿔 소리가 제대로 나게 한다는 뜻인데 120년 전의 경장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꼭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성공하는 경장이 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그의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국정 방향에 맞춰 공기업 개혁과 일자리 창출 등의 구체적인 과제들이 신갑오경장의 주요 현안으로 제시돼 있지만 신갑오경장의 구체적인 과제와 목표들이 구호로만 인식될 뿐 분명하지 않다. 또한 신갑오경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권 첫해인 2013년 계사년의 실패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반성이 앞서야 한다. 갑오경장이 성공하지 못한 것도 외세의 개입과 개혁에 대한 온 국민의 이해와 지지 없이 위로부터의 개혁에 그쳤고, 그해 초 실패로 끝난 동학농민혁명을 반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신갑오경장이 갑오경장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야당은 물론, 국민 모두가 함께 동참하는 개혁의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좁혀지지 않는 계층 간 세대 간 간극을 좁히고 갈등을 치유하는 소통의 리더십을 먼저 확인시켜줘야 한다.

원칙을 고수하는 강한 의지와 더불어,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야당과 시민사회의 날 선 비판도 겸허하게 수용하는, 독선을 버린 포용의 리더십이 확인돼야만 신갑오경장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형성될 것이다. '신갑오경장' 성공의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소통과 포용을 통한 신뢰 구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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