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생, 이태규는 프로골퍼다. 올해 마흔 둘로 불혹(不惑)을 넘었다. 운동선수에게 마흔은 '한물 간 선수', '노장'이란 꼬리표가 붙는다. 그러나 골프계에선 마흔은 많은 나이가 아니다. 쉰을 넘긴 프로골퍼도 많다. 그러나 그런 경우, 우승을 여러 번 한 프로골퍼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이태규 역시 골프 입문 25년 동안 우승 경험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그는 골프를 그만둘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도 등산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체력을 다지고 골프클럽을 휘두른다. 그에겐 꿈이 있으니까.
◆고교 때 프로의 꿈, 3년 만에 세미 프로
이태규는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필드하키 선수였다. 고교(방통고) 1학년 때 골프연습장에서 일하는 친구의 권유로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친구는 3년만 하면 프로 자격을 딸 수 있다고 했고, 그는 "프로가 되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레슨 한 번 받지 못했다. 주니어 대회 출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3년 만에 세미 프로 자격을 획득했다.
거기까지였다. 고교 졸업하자마자 입대했다. "군 입대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제대 이듬해인 1996년부터 한국프로골프(KPGA) 1부 투어 시드를 손에 넣기 위한 프로 자격증 도전이 시작됐다. 번번이 떨어졌다. 1998년 기회가 찾아왔지만 1타 차로 낙방했다.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안 되나' 하는 실망과 '내게 소질이 없나' 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론은 연습이었다. 죽으라 연습했다. 2002년, 무려 11차례나 고배를 마신 끝에 극적으로 테스트에 합격했다. 11전12기 만에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한 것이다. 장장 6년이 걸렸다. KPGA 투어 소속 프로가 된 것이다. "힘들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쁨도 잠시, 이듬해 1년차 무대에서 퍼팅 난조 등 심각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퍼트만 잡으면 불안해지는 퍼팅입스 때문이었다. 8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38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1부 시드를 잃었다. 이후 2부 투어를 뛰면서 가족생계를 위해 레슨도 해야 했다. 5년 동안 2부 투어 등을 전전하며 샷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골프인생이 끝난 것이 아닌가 하며 좌절도 했어요. 결혼을 한터라 생계도 책임져야 했거든요. 힘들었어요." 연습 또 연습했다. 2008년부터 1부 리그에서 다시 뛰게 됐다.
◆데뷔 7년 걸려 첫 우승, 그러나 다시 잠잠…
2009년 4월, 마침내 기회가 왔다.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한'중 KEB인비테이셔널대회'에서 꿈에도 그리던 첫 우승을 거둔 것. 프로 데뷔 7년 만에 거둔 우승이었다. 3라운드까지 선두에 7타나 뒤져 우승은 무리였다.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하자마자 1번 홀에서 보기를 범해 8차 차이가 났다. "어렵구나 싶었어요. 포기하고 하니 드라이브, 아이언, 퍼트가 안정됐어요."
기적이 일어났다. 다음 홀부터 샷이 폭발했다. 2번, 3번, 4번 홀에서 3연속 버디를 잡았고, 6번 홀에 이어 8번, 9번 홀에서 다시 3연속 버디를 터뜨리며 순식간에 공동선두에 올랐다. "긴가민가 싶었어요. 10번 홀까지 이동거리가 멀었는데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래, 욕심내지 말자고."
우승의 향배는 오리무중이었다. 13번 홀에서 보기로 주춤했지만, 이어진 14번 홀에서 버디로 만회해 12언더로 경기를 마쳤다. 2위권이 1타 차로 바짝 추격해왔다. 이태규는 연장전을 대비해 퍼트 연습을 하면서 경쟁자들의 플레이 장면을 지켜보며 차분하게 기다렸다. 2위로 쫓아오던 선수가 17번 홀에서 1.5m짜리 버디 퍼트를 놓친데 이어 18번 홀에서도 5m짜리 버디 퍼트가 살짝 비껴나갔다. 17번 홀의 경우 아마추어 골퍼들이라면 'OK'(컨시드)를 줘도 무방할 짧은 거리였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이태규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얼마나 기다리던 우승인가. 골프 입문 20년 만에 우승한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하루 종일 연습 또 연습…"쉰살 전에는 꼭 꿈 이룰 것"
그는 '골프는 인생 같다'고 했다. "골프는 인생처럼 희로애락이 있어요. 우여곡절도 많고요. 지금 힘들지만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또 '골프는 정직한 스포츠'라고 했다. "연습한 만큼 성적이 나와요. 그래서 매력있어요."
2009년 우승 이후 성적이 좋지 않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잘 안 된다"며 "연습밖에 없는 것 같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 아침 등산을 하고 오전에는 스트레칭 등으로 몸을 푼다. 그리고 오후 6시까지 연습한다.
"목표는 우승입니다. 특히 KPGA선수권, 한국오픈, 매경오픈, SK텔레콤, 신한동해오픈 등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어요. 쉰살이 넘으면 시니어로 넘어가는데 그 전에 우승했으며 합니다."
그는 오늘도 우승을 향해 골프채를 휘두른다. "꿈을 꾸면 이뤄진다고 하잖아요. 저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또 열심히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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