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즐거운 나의 집

어릴 적 바이올린을 배우며 익힌 곡 가운데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곡이 있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가사에선 집의 안락함이, 그리고 바이올린의 음색으로 덧입혀진 곡조에선 달달함과 푸근함이 느껴졌다. 후에 학교 음악 시간에 다시 배우며 외국곡에 한글 가사를 덧입힌 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한글 버전부터 먼저 들은 탓인지 지금도 한글 가사가 더 익숙하게 귓전에 와 닿는다.

노랫말처럼 '나의 집'은 그 어떤 곳보다 안락한 장소이다. 사람들이 밥을 먹거나, 잠을 청하는 일상생활을 할 때 다른 장소들과는 달리 오롯이 마음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고 지낼 수 있다. 그리고 집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그간 집의 소중함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몇 년 전, 나 자신이 머무는 나의 집이 얼마나 편안한지,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이 신체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주는지를 우리 앨리샤를 통해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어린 앨리샤에게 찾아왔던 폐렴이 점차 사그라질 무렵이었다. 한 달 정도 걸린다는 폐렴 치료를 위해 병원에 앨리샤를 보낸 지 3주쯤 지났을 무렵, 담당자에게서 폐렴이 거의 다 나았다며 데리고 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다음 연이어 하는 말에 나는 화가 치밀었다. 불과 일주일 전 보러 갔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앨리샤가 그 사이에 피부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 길로 찾아가 한바탕 언쟁 끝에 집으로 데려온 앨리샤의 귓등은 동그랗게 털이 빠져 있었다. 빨리 치료해야겠단 생각에 다음 날부터 집 앞 병원에 가서 예방접종도 받고, 피부병 치료도 시작했다.

처음에 담당자의 무책임에 화는 많이 났어도 크기가 고작 새끼손톱만 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피부병은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심했다. 그러더니 가뜩이나 진회색인 귀 부분이라 원 모양으로 털이 빠진 곳의 핑크색 피부가 더욱 눈에 잘 띄던 것이 멀리서 봐도 확연하게 티 날 정도로 범위가 넓어졌다. 다행히 귓등을 제외하고는 피부병이 더 퍼지진 않았다. 그러나 규칙적으로 약을 먹이고, 바르고, 병원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의사 선생님도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앨리샤의 귀가 좀처럼 낫질 않자 대학 교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했지만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이젠 피부병에 걸린 귀에 피부 조직이 파괴되어서 더 이상 털이 나지 않을 거란 얘기를 들었을 무렵 즈음 오빠가 항생제 부작용이 아니냐며 약을 한 번 끊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선생님도 한 번 약을 끊어보자며 동의했고 병원에 가지 않고 2주를 지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다시는 털이 나지 않을 것이라던 앨리샤의 귓등에 보송보송한 잿빛 털들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낫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은 되었지만 이렇게 쉽게 낫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결국 저절로 나은 피부병을 보며 의사 선생님도 스트레스성 피부병이거나 항생제 부작용이 원인이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더 이상 병원을 가지 않자 앨리샤는 놀라운 속도로 피부병이 사라졌다. 게다가 처음에 우리 집에 왔을 때 몹시 지저분하던 귓속도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꼭 한 주에 한 번씩은 귀 청소를 해줘야 한다던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바로 편안하고 따뜻한,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주고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안락한 집에서, 앨리샤는 자신을 괴롭히던 각종 질병에서 벗어난 것이다. 정말 상투적인 말이긴 하지만,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그 어느 좋다는 곳도 아닌, 바로 나의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누리는 시간들이 바로 행복이고, 그 행복함 속에서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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