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칼을 갖게 된 것은 신석기시대에 와서다. 그 이전에는 날카로운 돌을 대충 다듬어서 썼다. 칼을 갖게 되면서 조리가 훨씬 다양해졌고 사냥과 수확이 수월해졌으며 가죽의 재단이 정교해졌다. 무엇보다 살상력이 높아져 경쟁 관계에 있는 부족들을 제압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조잡한 타제석기를 쓰던 구석기 중기에 대혁신이 일어났다. 바로 흑요석(黑曜石)의 출현이다. 흑요석은 유리성분의 화산석인데, 간단한 가공만으로 날카로운 단면을 얻을 수 있다.
흑요석의 발견은 간단히 말하면 구석기 원시인이 '맥가이버 칼'을 갖게 된 것으로 비유될 수 있겠다. 이 신비의 돌은 화산지대에서만 발견된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한반도에서는 백두산이 유일하고 일본에선 규슈가 주산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돌이 구석기 시대에 이미 한반도 상당수 지역에 유통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강 이북지역부터 남해안까지. 물론 대구에도 들어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문명시대 첫 단추를 연 흑요석=흑요석은 인류가 청동기 시대를 맞이하기 전 접할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물체였다. 인류가 타격 위주 생활을 접고 자르고 베고 재단하는 문명시대로 향하는 첫 단추를 연 사건으로 비유된다.
검은 유리돌의 등장은 의식주 전반에 걸쳐 변화를 가져왔다. 날카로운 화살촉과 정교한 창날은 수렵 능력을 향상시켰고 예리한 칼날은 사냥한 고기를 해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옷감을 손질할 때도 훨씬 편리해졌다.
흑요석이 문명의 이기를 넘어 정복의 도구로 이용된 것도 이 시기다. 날카로운 칼과 화살촉은 파괴력을 현저히 높였다. 힘의 우열이 비슷한 부족 간에는 이 무기의 보유 여부가 지배, 피지배를 가르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고대 아즈텍 제국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 '마쿠아후이틀'라는 무기가 있다. 곤봉이나 몽둥이 양옆에 날카로운 흑요석을 박아 사람은 물론 말까지 열상(裂傷)을 입힐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였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는 수술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메스로 사용된 것이 다름 아닌 흑요석 나이프다. 잘 연마된 돌은 두께가 3㎚에 불과한 예리한 칼날이 된다. 지금도 심장수술이나 일부 외과 분야에서 흑요석 메스가 이용된다고 한다.
◆월성동 구석기 유적서 300여 점 발견=2006년 대구 달서구 월성동 유적에서 흑요석이 출토됐다. 학계는 긴장했다. 흑요석의 출토는 첫째 지역에서 구석기 존재 가능성을 연 것이고 둘째는 선사시대 한반도를 넘나드는 광역 교역망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가설이 힘을 얻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출토된 흑요석은 모두 364점. 주로 석기제작장으로 추정되는 4곳에 집중돼 있었다.
이 중에는 어른 주먹만 한 몸돌(석기를 제작할 때 원재에서 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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