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우(杞憂) 씨는 너무 감격해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결핵이라니요. 결핵이라서 행복해요." 기우 씨는 건강 하나만은 자신 있었다. 타고난 강한 체질과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서 같은 연배의 그 누구보다도 운동도 잘하고 건강하다고 자신했다. 담배가 해롭다는 이야기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30년 넘게 담배를 피워왔지만 폐렴 한 번 걸리지 않았을뿐더러 등산이나 달리기를 해도 숨도 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건강검진도 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건강한데 건강검진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러다가 얼마 전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평소 건강하게만 보이던 친구가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더 이상 건강을 맹신할 나이는 아니었다.
'뭐 별것 있겠나'하며 시작한 건강검진에서 폐에 덩어리가 발견돼 난생처음 CT 촬영도 했다. 그런데 결과를 설명하는 의사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폐 조직검사를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조직검사라면 주로 암 진단할 때 하는 검사가 아닌가. 마침 그 병원에 잘 아는 의사가 있어서 그를 통해 보다 자세한 내막을 알아봤다. "CT에서 보이는 덩어리 모양이 심상치 않다네요. 불규칙한 덩어리에서 주위로 퍼져 나가는 모양이 폐암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답니다."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입원해서 조직검사를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간은 기우 씨 인생에서 가장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나도 그 친구처럼 머지않아 고통 속에서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더불어 그동안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끊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남게 될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시간에는 로또 1등에 당첨된다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그 어느 때보다도 담배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지만 너무 걱정되기도 하고, 담배가 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담배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조직 검사 결과를 보는 날. 기우 씨는 사형선고를 받는 기분으로 병원에 갔다. 그런데 컴퓨터를 들여다보던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다행입니다. 결핵성 결절이네요. 처음에는 덩어리 모양이 좋지 않아서 폐암으로 생각했는데. 천만다행입니다. 결핵은 워낙 모양이 다양해서 폐암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기우 씨는 요즘 새로운 인생을 산다.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일 많은 양의 결핵약을 먹는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폐암이 아니라는데, 약을 먹으면 낫는다는데 그까짓 약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기우 씨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 결핵이라서, 폐암이 아닌 결핵이라서…. 극한을 맛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결핵이라서 행복해요."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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